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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왕국 9대 왕인 띨로까랏(Tilokaraj)의 재위 기간(1441-1487) 동안 발생한 주요 사건들과 특히 아유타야 왕국과의 관계를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주요 내용:
1. 띨로까랏의 등장과 권력 장악:
- 왕위 찬탈: 띨로까랏은 란나 8대 왕인 쌈팡깬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장남 타오 아이가 요절하고 여섯째 아들인 타오 록(훗날 띨로까랏)이 프라오를 맡았으나 군 파병 지연으로 매싸리앙으로 좌천되는 등 복잡한 상황 속에서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습니다.
- 쌈덱요이의 도움과 반란: 1441년, 매싸리앙에 있던 타오 록은 왕궁 주방에서 일했던 쌈덱요이의 도움을 받아 치앙마이로 비밀리에 돌아와 위앙 쩻린에 머물던 아버지 쌈팡깬의 왕궁에 불을 지릅니다. 쌈팡깬이 치앙마이로 돌아오자 타오 록은 이미 왕궁을 차지하고 있었고, 쌈팡깬은 왕위를 타오 록에게 물려주고 므앙 쌋으로 유배됩니다. 띨로까랏은 왕위에 오른 후 쌈덱요이에게 칸 지역으로 보내고 쌘칸 직책을 내리지만, 한 달 반 만에 쌈덱요이는 불만을 품고 왕궁을 점령하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 그래서 아버지 쌈팡깬이 그랬지요. "쟤 믿지마!"
- 반란 진압과 쌈덱요이 처리: 띨로까랏은 신뢰하던 람빵의 믄 록 나콘에게 쌈덱요이를 죽이지 않고 쫓아내라고 명합니다. 왕위찬탈에 큰 공을 세웠기에 말이죠. 믄 록 나콘은 쌈덱요이를 투안 지역으로 도망가게 하고, 띨로까랏은 그에게 투안 지역을 주어 믄 투안이 되게 했으나, 이후 멀리 떨어진 치앙 쌘으로 보내 문제를 해결합니다.
- 아버지와 막내동생 문제: 므앙 쌋으로 유배된 아버지 쌈팡깬은 조용히 지내며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쌈팡깬의 막내아들 타오 써이는 띨로까랏에게 불만을 품고 아버지를 복위시키려 팡에서 군사를 모읍니다. 띨로까랏은 믄 록 쌈란(므앙 록 나콘)을 보내 타오 써이를 추격하여 므앙 텅의 군주 앞에서 타오 써이를 죽입니다. 이 사건은 므앙 텅 군주가 아유타야에 밀서를 보내는 계기가 되어 란나와 아유타야 간의 장기 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2. 띨로까랏의 영토 확장 전쟁:
- 전성기: 띨로까랏의 재위 기간은 란나의 최전성기로 평가됩니다. 그는 46년간 지속적인 정복 전쟁을 통해 동쪽으로는 루앙 프라방, 북쪽으로는 운남과 버마 샨 지역, 서쪽으로는 버마 서쪽 샨 지역, 남쪽으로는 랍래와 피싸눌룩 등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 난 정복: 1443년, 난의 지도자 파야 깬 타오는 베트남의 위협을 명분으로 띨로까랏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는 속임수였습니다. 깬 타오는 난을 돕기 위해 온 란나 군대를 기습하여 지휘관을 죽입니다. 저녁 만찬에 초대하고는 몰살시켜버리지요.이에 분노한 띨로까랏은 1443년부터 1448년까지 전쟁을 벌여 난을 정복하고 깬 타오는 아유타야로 도망갑니다.
- 주변 지역 복속: 난과의 전쟁 과정에서 프래를 손에 넣는 등 주변 지역을 복속시켰습니다. 1449년에는 루앙 프라방의 난 공격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 베트남 격퇴와 명나라 인정: 1480년, 베트남이 루앙 프라방과 난을 공격하자 띨로까랏은 군대를 보내 베트남을 물리쳤습니다. 이 공으로 난의 타오 카깐에게 치앙라이를 맡겼습니다. 란나가 베트남을 물리친 소식을 들은 명나라 황제는 띨로까랏을 "서쪽의 정복왕"으로 인정했습니다.
- 라와족과의 전쟁: 1485년, 라와족이 므앙 용을 공격하자 란나 군대가 이를 물리쳤습니다. 라와족은 치앙 룽으로 도망쳐 "미친 코끼리" 전술로 저항했으나 란나 군대의 화력에 패배하고 치앙 룽을 빼앗겼습니다.
3. 아유타야와의 지속적인 갈등과 관계 변화:
- 장기 전쟁의 시작: 타오 써이 사건과 므앙 텅 군주의 밀서로 인해 란나와 아유타야 간의 장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1442년부터 1474년까지 3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 최초 충돌 (1442): 아유타야의 보롬마라차티랏 2세가 치앙마이를 공격하며 첫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믄 록 쌈란은 아유타야 스파이를 역이용하여 아유타야 군대를 속이고 람푼 근처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한 아이, 한 이, 한 쌈 삼형제의 코끼리 혼란 전술과 믄 먹렁의 용맹함이 돋보였습니다.
- 유티싸티안의 전향과 갈등 심화: 1451년, 아유타야 왕 보롬마뜨라이록까낫의 친구이자 쑤코타이 왕가의 혈족인 유티싸티안이 띨로까랏에게 전향했습니다. 그는 보롬마뜨라이록까낫에게 약속받은 땅을 받지 못하자(어렸을 때 그냥 말했던 것인데...) 배신감을 느끼고 란나로 넘어왔습니다. 띨로까랏은 유티싸티안을 양자처럼 대우하며 싼깜팽과 파야오를 맡겼습니다. 유티싸티안은 띨로까랏을 칭송하며 아유타야 왕을 비난했고, 이는 아유타야의 분노를 사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 1457년 전쟁: 1457년, 아유타야의 뜨라이록까낫은 아들 인타라차와 함께 치앙마이를 공격했습니다. 람빵 왕강 부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유티싸티안은 인타라차와 코끼리 전투를 벌여 승리했습니다. 란나의 총공격으로 아유타야 군대가 후퇴했고 띨로까랏은 아들과 손자의 추격을 만류했습니다. 믄동나콘이 아유타야 군을 계속 추격하여 몰아냈고, 이 전투는 란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1460년 썽쾌 전투: 1460년, 띨로까랏은 썽쾌(피싸눌록)에 머물던 뜨라이록까낫을 포위 공격하여 아유타야로 피신하게 만들었습니다.
- 주술 공격 (1465-1466): 아유타야는 군사적 방법 외에 주술을 사용하여 란나를 약화시키려 했습니다. 버마 승려와 중국 무슬림을 보내 치앙마이의 상징적인 반얀나무를 베어내고 성문에 주술이 담긴 항아리를 묻는 등 혼란을 야기하려 했으나 발각되어 처형당했습니다.버마 승려의 논간에 치앙마이 북동쪽 씨품 지역을 갈아엎고 반얀나무를 베고, 왕궁을 설치하고 성벽의 일부를 헐어 성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 찰리앙(치앙츤) 점령전과 믄동나콘의 죽음: 1461년, 란나가 찰리앙(치앙츤)을 점령하고 믄동나콘에게 통치를 맡겼습니다. 1474년, 믄동나콘이 반란을 꾀한다는 소문에 띨로까랏은 그를 치앙마이로 불러들여 처형했습니다. 믄동나콘의 부인이 아유타야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찰리앙을 두고 양국 간에 공방전이 벌어졌고, 결국 찰리앙은 아유타야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유안파이에서는 믄동나콘의 죽음을 억울한 희생으로 묘사하며 띨로까랏의 부덕함을 비판했습니다. 당시 믄동나콘은 찰리앙에서 존경을 받는 영주였다고 합니다.
4. 띨로까랏 통치 후반부의 비극과 왕위 계승:
- 아들 타오 분르앙 처형: 아유타야의 주술 공격과 연관될 수 있는 사건으로, 후궁 매타오허묵의 모함으로 인해 띨로까랏은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타오 분르앙을 반란 혐의로 처형했습니다. 타오 분르앙의 죽음은 띨로까랏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란나의 미래에 불안정성을 야기했습니다.
- 유능한 장수들의 죽음: 타오 분르앙 외에도 띨로까랏은 유능한 장수였던 믄동나콘과 믄마를 모함으로 인해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띨로까랏 통치 후반부의 불안정성과 유능한 인재 손실을 보여줍니다.
- 왕위 계승 혼란: 1487년 띨로까랏 사후, 그의 아들 타오 분르앙은 이미 처형되었기에 손자인 엿 치앙라이가 란나 10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엿 치앙라이는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경험으로 인해 성격이 비뚤어졌다는 묘사가 있으며, 중국 허족 여인을 총애하고 란나의 전통을 무시하여 귀족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결국 8년 만에 귀족들에 의해 쫓겨나고 그의 아들 파야 깨오가 14세의 나이로 즉위하며 혼란스러운 왕위 계승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결론:
띨로까랏의 재위 기간은 란나 왕국의 최전성기였으며,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군사적 능력으로 영토를 최대로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내부적인 갈등과 비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아유타야와의 27년간의 지속적인 전쟁은 양 왕국 모두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결국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띨로까랏의 아들 처형, 유능한 장수들의 죽음은 그의 통치 후반부를 어둡게 만들었으며, 그의 사후 왕위 계승 과정의 혼란은 이러한 내부 문제가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띨로까랏 시대는 란나 왕국의 영광과 비극이 교차하는 시기였으며, 그의 통치 스타일과 결정은 란나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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