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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부리 씨 나콘핑 치앙마이นพบุรีศรีนครพิงค์เชียงใหม่
1296년 4월 19일, 9만명을 동원하여 4개월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공사는 마무리되고,
당당하게 후아 위앙(지금의 창프악)을 통해 성내로 들어간다.
이때 망라이는 라와족의 방식대로 개를 앞세워 들어가게 된다.
개를 앞세워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치앙마이 역시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세워진 도시가 아닌 이미 라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을 것이다.
라와족은 대대로 도이 쑤텝 기슭을 근거지로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662년 짜마테위가 하리푼차이를 세우고
쌍둥이를 낳고
쌍둥이들이 7살이 되었을 때 라와족의 마지막 왕 윌랑카와 싸웠다고 하면
고구려가 멸망 1년 후인 669년까지 도이 쑤텝 부근은 라와족의 근거지였고
이후 하리푼차이와 공존하였다고 해도 라와족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새로 세워진 치앙마이가 위치적으로 좋다고 하면 그 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치앙마이-도시-완공-1296년-4월-19일-0400?category=1022436
치앙마이 도시 완공 1296년 4월 19일 04:00
새로운 도읍지로 정할 만한 장소를 발견한 망라이는 지역 원로들(라와족)에게 "여기 정말 살기 좋죠?"라고 최종적으로 확인을 거친 후 지금의 왓 치앙만 부근에 먼저 거의 거처 등을 건설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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