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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라이72

독특한 치앙라이 사원, 왓 밍므앙 그의 어머니가 세운 사원 치앙라이의 마음에 드는 사원 가운데 하나인 왓 밍므앙วัดมิ่งเมือง 치앙룽(쳉훙), 타이 르족의 공주로 망라이의 어머니가 세우고 묻힌 사원이다. 망라이의 어머니가 세우고 버고를 공격하러 갔다가 데리고 온 부인 낭 우싸 빠이꼬가 증개축한 사원으로 이 사원의 양식들이 독특하다. 난 아래의 저 드래곤 볼이 마음에 들던데... 내부로 들어서면 망라이의 혈통 초상화가 있는데, 시조 라와짱까랏부터 태국,라오스 북부에서 가장 유명한 쿤 쯔앙 망라이의 부모, 응언양 25대 라오 멩과 치앙 룽의 우아 밍 쫌므앙 그리고 망라이와 그 부인들의 그림들이 있다. https://www.youtube.com/shorts/1cqZvuH3nAU?feature=share https://www.youtube.com/shorts/h.. 2023. 9. 4.
망라이가 벼락 맞아 죽은 자리를 거쳐 허캄 프라야 망라이까지... 치앙마이 야마하 센터 골목으로 들오가면 망라이 사당이 나오는데, 이 자리는 바로 망라이가 중앙 시장 부근을 코끼리를 타고 가다 벼락을 맞아 죽은 자리로 추정된다. 1311년 또는 1317년 이 사당을 보려면 큰 길가에서 들어가면 간단하지만 왓 두앙디 사원 뒷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다. https://www.youtube.com/shorts/4ElvmS5DA64 그런데 이 사당은 야마하 부지 안에 있기에 자유롭게 사람들이 참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사당을 조금 더 지난 사거리 부근에 새로이 만들게 된다. 이곳의 벽면에는 망라이의 일대기 부조가 있다. 망라이를 그래도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공사 중인 예전 교도소 방향으로 가면 허캄 프라야 망라이가 있다. 이곳과 인연을 맺으려 했지만 주.. 2023. 3. 30.
치앙마이 교도소의 슬픔 귀신 이야기는 우선 빼고, 씨암이 란나를 먹으며 진행시킨 일 중에 교도소 건립이 있다. 어디에?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었듯 란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왕궁을 허물고 바로 교도소를 세웠던 것이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내부에 교도소를 큼직하게 건립했던 것이다. 바로 란나의 상징성을 밟아버린 것이다. 그 자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 죄수들의 갱생 마사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역사를 보면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다. 여자 죄수들은 지금은 매땡에서 온다. 찾아가 보았다. 어딜? 매땡을? 아니 왕궁터, 위앙깨오를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지금 공원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오래 전부터 철거와 함께 유적 발굴이 이루어지며 미루어지고 있다.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물어보았다. 1. 들어갈 수.. 2022. 12. 5.
벽화로 보는 망라이의 일대기 동영상 벽화로 보는 망라이의 일대기를 벽화 사진이 있는 https://www.photodharma.net/ 의 허락을 얻고 정리해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r7uo3SvIpU&t=118s 2022. 9. 18.
하루 한 문장 28 - 망라이 라뿐으로 들어가다. 사람사는 세상, 참 신기하다. 란나글자를 알아서 뭐하나 했더니, 생각도 못하게 저 벽화를 소개한 사이트와 이야기를 하여 타이틀 수정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나에게는 참 고마운 사이트!!! 파야 망라이, 카오므앙 라뿐 파야 망라이, 람푼으로 들어가다. (람푼 정복) 2022. 9. 16.
란나ล้านนา는 무슨 뜻일까요? 란나는ล้านนา 무슨 뜻일까요? 란쌍은? 란창, 란짱은? 무슨 뜻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TpCUPivBbxM&t=49s 2022. 9. 13.
망라이와 란나 이야기 유튜브 업로드? 망라이 일대기와 이후의 란나 역사이야기를 간략하게 유튜브에 저장해두는 작업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말 잘듣고 때로는 대드는 사춘기 막내 아들에게 부탁하여 잘 때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볼까 한다. 기회가 되면 깜므앙도 함께! 테스트로 만들어봤는데, 힘든건 아들이지 내가 아니더라 ㅋㅋㅋ https://youtu.be/XxJo9dZwJek 2022. 9. 5.
망라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 란나에의 신분계급 유지는 출생신분을 인정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왕족, 귀족, 승려, 평민, 노예로 이루어진 란나의 신분, 1198년 고려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더냐?!" 라고 외쳤던 만적, 100여년이 지나 란나에서 망라이가 답을 던진다. 망라이는 말한다. "왕족이 아니라면 왕이 될 생각을 갖지 말고, 귀족이 아니라면 관료가 될 생각을 하지 마라. 버차이 츠아짜오 꺼 야 왕뻰프라야, 버차이 츠아쎄나 꺼 야 왕뻰암맛 (버짜이 쯔아짜오 꺼 짜빠이 왕뻰쁘라야, 버짜이 쯔아쎄나 꺼 짜빠이 왕뻰암맛 ㅋㅋㅋ) บ่ใช่เชื้อเจ้าก็อย่าหวังเป็นพระยา บ่ใช่เชื้อเสนาก็อย่าหวังเป็นอำมาตย์" * 즉, "응,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어."라고... 그래서! 띨로까.. 2022. 9. 2.
치앙마이의 처음과 마지막, 위앙 깨오เวียงแก้ว 망라이 형님의 치앙마이 건설 이야기를 몇 번 다루었고 또 앞으로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 다루겠지만 그 치앙마이의 마지막, 란나의 마지막은 결국 왕궁이 사라지는 것, 왕궁의 상징성이 사라지는 시점이 되었을 것이다. 치앙마이는 위앙 치앙마이 그리고 위앙 치앙마이 안쪽에 왕궁이 있는 위앙 깨오เวียงแก้ว 의 이중으로 만들어졌다. 위앙 깨오는 아누싸와리 오와빼โอวาแป๊ะ의 뒤쪽 대각선 방향에 있다. 버마 독립 후의 까윌라가 치앙마이를 복구하고 다시 입성할 때, 그는 망라이가 했던 대로 후아위앙(창프악)을 통해 성내로 들어가 치앙만에 잠시 머물다 이어 위앙깨오로 들어갔다. 이 위앙깨오가 망라이 때부터 사용되던 왕궁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그 위치와 상징성 또 건물 일부 벽에서 발견된 위앙 깨오라.. 2022.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