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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172

왓 부악크록루앙 - 새 부리를 가진 나가와 고대 벽화 난에 푸민사원 벽화가 있다면 치앙마이에는 왓 부악크록 루앙 벽화가 있습니다. 이 사원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새 부리를 가진 나가와 고대 벽화가 있습니다. 벽화는 타이야이 예술가가 그렸으며 붓다의 자타카(본생담)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일상생활이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중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위 그림을 벽화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을 찾아낸다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ㅋㅋㅋㅋ 벽화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사원, 왓 부악크록루앙입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5hMe-mDdVc8 https://www.youtube.com/shorts/c7VonER14Dc 2024. 4. 5.
왓 우몽 2곳의 전설과 역사_ 들어가기 치앙마이에는 두 곳의 왓 우몽이 있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왓 우몽은 도이수텝 기슭에 있는 왓 우몽 수안푸타탐วัดอุโมงค์ สวนพุทธธรรม이고, 또 한 곳은 치앙마이 성 안의 타패 인근에 있는 왓 우몽 마하테라짠วัดอุโมงค์ มหาเถรจันทร์ 이다. 마하테라짠, 짠 큰 스님 사원=달 큰 스님 사원 그런데 왓 우몽 수안푸타탐에 가도 마하테라짠이란 이름을 많이 듣게 되는데, 두 사원이 서로 관련이 있는 사원일까? 답은 그렇다. 마하테라짠을 중심으로 두 사원의 역사와 전설을 소개해보면... 2023. 9. 19.
치앙라이의 왓 뭉므앙วัดมุงเมือง, 부적이 난무하는 사원 왓 밍므앙과 왓 뭉므앙을 태국 사람들도 헷갈려 하는 듯 구글지도의 사진과 정보에도 혼동이 보인다. 왓 밍므앙은 망라이 어머니인 우아 밍 쫌므앙이 세운 사원으로 드래곤 볼이 보이고 왕 뭉므앙은 시장에 있는 사원 내부 벽과 천정에 점성술과 란나 부적이 가득한 사원이다. 부적의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스님들은 어디갔는지 물어볼 수가... 버마에서도 전쟁시에 다양한 주문, 주술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다양한 주문이 행해졌는데, 전쟁에 나갈 때 코끼리와 같은 기운을 얻고자 할 경우 해당 주문을 외운 후 주문을 쓴 종이를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 마시고 출전했다고도 한다. 파야오의 응암 므앙 부인과 바람을 피고 도망치던 수코타이의 람캄행이 다양한 동물로 변신하자 그를 쫓던 응암 므앙의 부하들이 역시 그에 맞선 동.. 2023. 9. 6.
망라이가 벼락 맞아 죽은 자리를 거쳐 허캄 프라야 망라이까지... 치앙마이 야마하 센터 골목으로 들오가면 망라이 사당이 나오는데, 이 자리는 바로 망라이가 중앙 시장 부근을 코끼리를 타고 가다 벼락을 맞아 죽은 자리로 추정된다. 1311년 또는 1317년 이 사당을 보려면 큰 길가에서 들어가면 간단하지만 왓 두앙디 사원 뒷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다. https://www.youtube.com/shorts/4ElvmS5DA64 그런데 이 사당은 야마하 부지 안에 있기에 자유롭게 사람들이 참배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사당을 조금 더 지난 사거리 부근에 새로이 만들게 된다. 이곳의 벽면에는 망라이의 일대기 부조가 있다. 망라이를 그래도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공사 중인 예전 교도소 방향으로 가면 허캄 프라야 망라이가 있다. 이곳과 인연을 맺으려 했지만 주.. 2023. 3. 30.
치앙마이 교도소의 슬픔 귀신 이야기는 우선 빼고, 씨암이 란나를 먹으며 진행시킨 일 중에 교도소 건립이 있다. 어디에? 일본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었듯 란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왕궁을 허물고 바로 교도소를 세웠던 것이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내부에 교도소를 큼직하게 건립했던 것이다. 바로 란나의 상징성을 밟아버린 것이다. 그 자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 죄수들의 갱생 마사지로 유명하지만 사실 역사를 보면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다. 여자 죄수들은 지금은 매땡에서 온다. 찾아가 보았다. 어딜? 매땡을? 아니 왕궁터, 위앙깨오를 찾아가 보았다. 그곳은 지금 공원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오래 전부터 철거와 함께 유적 발굴이 이루어지며 미루어지고 있다.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물어보았다. 1. 들어갈 수.. 2022. 12. 5.
란쌍에서 온 12살의 쎗타티랏, 란나의 16대 왕이 되다. 란쌍을 떠난 쎗타티랏(차이쳇타티랏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은 치앙쌘, 치앙라이를 거쳐 1546년 6월 치앙마이에 도착한다. 이때 쎗타티랏을 초대한 귀족들은 대대적인 환영을 하며 그를 왓 치앙은วัดเชียงยืน으로 초대한다. 왓 치앙은에 들러 경의를 표한 후 후아 위앙(창프악 게이트)를 통해 왕궁으로 들어가 란나의 16대 왕이 된다. 이때 쎗타티랏의 나이 12살이다. 잠시 치앙마이를 맡아 아유타야와 므앙 나이의 공격을 막아낸 찌라쁘라파는 조용히 외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외할머니가 있다 하지만 쎗타티랏에게는 낯선 치앙마이, 그를 지원하는 귀족들이 불렀다고 해도 쎗타티랏에게 실질적인 힘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란쌍에서 들려온 아버지 포티싸랏의 사망소식을 듣고 1년이 조금 지난 1547년.. 2022. 10. 3.
왓 씨 쑤판วัดศรีสุพรรณ, 쩨디 폭우로 붕괴 2022년 9월 29일 오후 치앙마이 토요시장 부근에 있는 왓 씨 쑤판의 오래된 쩨디가 폭우에 무너져내렸습니다. 몇 번의 복원이 있었던 쩨디로 내부는 흙으로 쌓여있어 빗물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차에 폭우로 인해 외벽이 깨지며 빗물이 스며들어 결국 붕괴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ODD22O-RCs&t=75s 또 며칠 전에도 망라이가 치앙마이를 건설한 후 처음 정식으로 도시로 들어갈 때 라와족의 전통을 따라 개를 앞세우고 들어갔던 후아 위앙 게이트(창프악 게이트)의 일부도 무너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왓 씨 쑤판은, 란나 망라이 왕조의 11대 왕인 파야 깨오(1495-1526) 때 세워진 역사가 500년이 넘는 사원으로, 조선에서 홍길동이 체포.. 2022. 10. 1.
버마에 먹히기 전까지의 란나 역사 마무리 ~1558년 올 한해 열심히 란나 역사를 정리해왔습니다. 지난 봄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시간날 때 마다 틈틈히 정리하여 예약으로 올려둔 글들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네요. 1558년 버마에 허무하게 무너진 망라이 왕조의 란나, 이후의 역사는 차후 시간나는 대로 천천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558년 버마에 먹힌 망라이 왕조의 란나가 가장 란나다운 란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후의 역사는 감정이입을 조금 덜한 상태로 볼 생각입니다. 어떤 나라의 역사든 사람사는 세상의 역사는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의미가 인간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최근에는 간단한 편집을 배워 아이와 함께 란나와 란나 말(캄므앙) 그리고 태국어도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덕분에 태국어 공부를 다시.. 2022. 9. 26.
위기에 빛난 찌라쁘라파 여왕의 활약(1545-1546) 앞에서 쌘 크라오는 왕위를 이을 마땅한 후계좌가 없기에 치앙 뚱과 므앙 나이의 영주(군주, 왕)들에게 치앙마이로 와 왕이 되라고 한다. 이때 치앙 뚱에서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므앙 나이에서는 오케이하고 치앙마이로 이동하게 된다. * 이때 귀족들이 왕도 죽이는 마당에 자기들이 왕을 칭하거나 아무나 내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말 안들었을 경우 유배로 보내기도 하는 지역의 영주들을 왕으로 불러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족이 아니라면 왕이 될 생각을 갖지 말고, 귀족이 아니라면 관료가 될 생각을 하지 마라." 라고 망라이가 말했던 란나를 지배하는 신분원칙이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왕후장상의-씨가-따로-있다 마.. 2022.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