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메르3

하리푼차이와 라워, 3차전과 4차전의 승자는? 1차전 하리푼차이의 라워 공격, 탑쌓기 - 라워 승 2차전 라워의 하리푼차이 공격, 연못파기 - 하리푼차이 승 2차전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 라워 왕자의 패배는 라워의 왕에게는 충격이었다. 전력 손실 뿐만 아니라 자존심마저 상한 그는 "열받는데 이를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누구 이 원한을 풀어줄 사람 없는가?" "저요!" 이때 손을 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푸트리야, 말하자면 군 장성 중 한명이라고 할까. "제가 위대하신 폐하의 영광을 드높이고 감히 우리 라워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단단히 손을 봐주고 오겠습니다." 이에 라워 왕은 그에게 중무장한 군사들과 말, 코끼리 등을 주어 하리푼차이로 보낸다. 하리푼차이에서 살아 돌아왔던 군사들은 다시 출정해야 한다는 소식에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또 가?.. 2022. 8. 26.
라와족 왕이 하리푼차이 9대, 10대 왕이 되다. 라와족의 마지막 왕 윌랑카를 이긴 짜마테위, 이어 라와족은 뿔뿔히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라와족이 완전 해체되었던 것은 아니다. 윌랑카가 스스로 창을 하늘로 던져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신의 쌍둥이 두 딸과 짜마테위의 두 아들을 결혼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쌍둥이로 비유되는 하리푼차이와 켈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리푼차이와 라와의 공존 즉 비록 라와족이 힘을 잃었지만 어느 정도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된다고 생각한다. 짜마테위 사후 마한따욧도 80세의 나이에 죽고 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고 얼마 안가 동생 아한따욧도 켈랑에서 죽어 하리 푼차이로 유해를 가져와 묻는다. 어느 역사나 그렇지만 마한따욧 사후 이어지는 왕들은 비록 기록이 거의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란나 망라이 이후의 사건.. 2022. 7. 27.
앙코르 톰, 쑤코타이 그리고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쑤코타이의 람캄행과 파야오의 응암 므앙의 머리를 모아 건설했다. 삼국의 삼총사의 머리를 맞댄 결과가 바로 치앙마이 도시건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삼총사는 당시 롭부리에서 함께 공부했던 유학파들로 당시는 크메르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1238(39)년 생들이니 크메르 자야바르만7세가 죽고 20년 정도 뒤의 인물들로 이들은 크메르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치앙마이-도시-완공-1296년-4월-19일-0400?category=1022436 치앙마이 도시 완공 1296년 4월 19일 04:00 새로운 도읍지로 정할 만한 장소를 발견한 망라이는 지역 원로들(라와족)에게 "여기 정말 살기 좋죠?"라고 최종적으.. 2022. 2. 2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