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와족의 마지막 왕 윌랑카를 이긴 짜마테위,
이어 라와족은 뿔뿔히 흩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라와족이 완전 해체되었던 것은 아니다.
윌랑카가 스스로 창을 하늘로 던져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자신의 쌍둥이 두 딸과 짜마테위의 두 아들을 결혼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쌍둥이로 비유되는 하리푼차이와 켈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리푼차이와 라와의 공존 즉 비록 라와족이 힘을 잃었지만 어느 정도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된다고 생각한다.
짜마테위 사후 마한따욧도 80세의 나이에 죽고 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고 얼마 안가 동생 아한따욧도 켈랑에서 죽어 하리
푼차이로 유해를 가져와 묻는다.
어느 역사나 그렇지만
마한따욧 사후 이어지는 왕들은 비록 기록이 거의 없어 알 수는 없지만 란나 망라이 이후의 사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 재위하면 왕의 덕이 있어서요, 일찍 죽으면 덕이 없어서라고 하며 8대 꿀라테와กุลเทวะ(881-889)에 이른다.
꿀라테와는 8년을 재위하게 된다. 적다. 그렇다면 덕이 부족하고 욕심이 많았을 것이다.
보자.
꿀라테와가 재위하자 점성술사, 브라만, 승려 등이 한결같이 "돼지 해가 되면 나라에 많은 불행이 닥칠 것이다."라고 예언하게 되고 이를 들은 꿀라테와는 묻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어찌해야 할꼬?"
"뻔하지요. 덕을 쌓아야 하고, 탐욕을 버려야만 합니다. 나라에 인정이 넘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냐?"
하지만 역사가 되려면 이를 무시해야 하는 법, 꿀라테와는 이를 무시하고 마침내 돼지 해가 오고 만다.
돼지 해가 되어 라와족(밀라카) 왕은 군대를 모집하고 하리푼차이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한다.
하리푼차이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라와에게 먹히고 만다.
이때 살아남은 하리푼차이 사람들은 도이 쑤텝 북서쪽의 싸므응สะเมิง으로 피신하게 되고,
하리푼차이를 마음껏 약탈한 라와족 왕은 싸므응으로 도망간 하리푼차이 사람들을 다시 하리푼차이로 부른 후 3년 3개월(889-891)을 그곳에서 통치하다가 재미가 없었는지 그만두고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간다.
이어 이번에는 다른 라와족 왕이 이때다 싶어 등장하여 또 다시 하리푼차이로 들어와 1년(892)을 통치하다가 죽고 만다.
여기서 라와족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때 라와족은 하나의 통합된 나라나 규모있는 도시 국가가 아닌 그보다는 작은 형태의 도시국가, 부족국가 형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부족장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까? 호족?
다르게 생각하면 그 정도 규모의 외부세력에 당할 정도로 하리푼차이는 타락한 상태라는 말도 된다.
아직 확실한 왕위계승이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1년 만에 죽은 라와족 왕에 이어 다시 하리푼차이 왕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거의 1~2년 재위하는 안정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19대 와뜨라싸따랏วัตราสัตถะราช(916-918)왕이 등장한다.
그도 재위 기간은 2년 10개월이지만,
생각지도 않은 라워 공격을 시작한 왕이다.
군대를 모아 삥강을 타고 내려가 라워를 공격하여 이때부터 라워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앞서 라와족에 당하기도 하고 이후 왕들의 재위기간도 짧은 만큼 제대로 된 군사력이나 체계를 보유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뜬금없이 라워를 공격한다.
아마도 기록에 없는 어떤 사건들이 계속하여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 멀리 내려가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라워는 이미 크메르에게 점령된 상태로 하리푼차이만이 크메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였는데 이러한 상황이 라워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라워와 하리푼차이, 같은 몬족이었을테니...
아무튼 이후 하리푼차이와 라워는 오랜 재미있는(?) 전쟁을 시작한다.
10세기에 벌어진 하리푼차이와 라워의 전쟁은 15세기의 란나와 아유타야 전쟁의 전초전 같은 느낌이다.
이어서 19대 와뜨라쌋타랏วัตราสัตถะราช의 라워와의 전쟁 그리고 21대 카몬락กมลราช 때의 콜레라 유행에 따른 하리푼차이의 황폐화와 홍싸와디หงสาวดี(함싸와디, 한타와디)로의 피난 등을 다루고 계속하여 아티따야랏 시대 벌어졌던 라워와의 전쟁을 소개할 예정이다.
* 재위 연대는 요녹연대기를 참고했다.
1대 짜마테위부터 21대 까몬랏กมลราช까지는 짜마테위웡과 요녹연대기의 재위기간이 일치한다.
짜마테위웡에서 연대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연대는 요녹연대기를 참고한다.
요녹연대기에서 짜마테위가 657년부터 재위했다고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연대가 너무 빠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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