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끄나2 란나 5대왕, 파야 파유พญาผายู, 끄나의 아버지 파야 캄푸가 치앙캄에서 악어에 물려 죽고, 이 소식은 치앙마이에 있던 아들 파유에게 전해지게 되고, 파야 파유พญาผายู는 아들 타오 끄나에게 치앙마이를 잠시 맡기고 치앙쌘으로 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파유는 치앙쌘에 머물지 않고, 다시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통치를 하게 된다. 망라이에서 시작된 치앙마이가 5대 파유에 와서 다시 란나 왕의 중심지로 역할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치앙마이(망라이) - 치앙라이(파야 차이쏭크람) - 치앙쌘(쌘푸) - 치앙쌘(캄푸) - 치앙마이(파유) 파유는 아버지의 유골을 가지고 치앙마이로 돌아와, 쁘라뚜 수완독 부근 성 안쪽에 쩨디를 짓고 유골을 보관한다. 그리고 그곳에 사원을 짓게 되는데 이름하여 왓 리치앙프라วัดลีเชียงพระ로 이후 왓 프라씽วัด.. 2022. 2. 27. 왓 쩨디루앙 건설에 관한 전설 정확한 설립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시작은 란나 7대 쌘므앙마 시대였다. 1385년에서 1401년 사이 또는 1391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 끄나 왕의 유물과 유해를 보관하기 위해 시작하였다고 하니 삼촌 마하 프롬의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고 아버지의 유해를 성밖에서 성벽의 일부를 뚫어 가져온 이후라야 할테니 최소 1386년 이후가 될 것이다. 왓 쩨디루앙 설립에 관한 전설이 있는데... 끄나 왕이 죽고 아들 쌘므앙마가 란나 7대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치앙라이에 있던 동생 마하 프롬(쌘므앙마의 삼촌)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바로 장례절차를 진행하지 못한 상태로 6개월여를 방치된 채로 있다가 반란이 마무리된 후 장례를 치루게 된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버마의 바간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 상인들이.. 2022. 2. 1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