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5 꼭강을 타고 팡에서 치앙라이로 가는 여행 팡에서 치앙라이로 흐르는 꼭 강이기에 팡에서 치앙라이로 가는 여행은 반대의 여정보다 수월하다. 대나무 뗏목을 탄 스님들은 보자기를 쓰고 있기도 하다. 머리카락이 없어 뜨거운 햇빛을 바로 받으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앞의 벽화에도 나온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들은 물에 익숙하고, 또 물 위에서의 싸움에 능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꼭 강에는 어종도 풍부해보인다.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여유롭게 치앙라이로 가고 있다. 우산을 쓰고 담배를 든 여인에게 악기를 들고 담뱃불을 붙여주고 있는 남자도 보인다. 성벽 뒤의 군사들에게서는 어떠한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더 이상 망라이를 위협할 만한 지역은 없어서일까? 2022. 3. 25. 팡을 건설하는 망라이 이 벽화부터는 다양한 헤어 스타일이 보인다. 다양한 헤어 스타일은 다양한 지역 출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는 주변을 정복하거나 복속하는 과정에서 데리고 온, 잡아 온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 땅은 넓어도 경작하거나 공사를 할 노동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정복전쟁을 하며 무엇보다 필요한 그 노동력을 빼앗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지면 강제 이주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지는 시절이었다. 2022. 3. 23. 팡의 왓 쩨디응암วัดเจดีย์งาม 벽화로 보는 망라이 일대기 팡ฝาง의 왓 쩨디응암วัดเจดีย์งาม의 망라이의 일대기가 담긴 벽화는, https://www.photodharma.net/ 에서 CCA 3.0 라이센스로 공개되어 있다. 왓 쩨디응암은 1478년, 띨로까랏 재위 당시에 지어진 사원이다. 물론 이 벽화는 사원 건설 당시에 그려진 것은 아니고,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벽화를 통해 쉽고 간단하게 망라이의 일대기를 전해보고자 한다. 이어 직접 사진을 찍어 둔 하리푼차이 건립기도 있으나 중간 중간 빠진 부분이 있어 차후 마무리되는 대로 망라이 일대기 후에 소개할 계획이며, 차후에도 벽화를 통해 란나의 역사와 문화를 계속하여 소개해 볼 생각이다. 아래 두 사진의 출처는 https://www.photodharma.net/Guests/Blandford-.. 2022. 3. 15. 3월의 주제 이야기 - 란나의 강철 손목เจ้าพ่อข้อมือเหล็ก을 가진 영웅들 람빵에서 응아오로 넘어가는 길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영웅시되는 인물의 사원이 하나 있다. 바로 짜오퍼쁘라뚜파เจ้าพ่อประตูผา 또는 파야므렉พญามือเหล็ก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쁘라뚜파เจ้าพ่อประตูผา 절벽 문이라고 해야 하나, 절벽을 방패 삼아 버마군과 싸우며 버마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짜오퍼쁘라뚜파는 파야므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칼을 팔뚝으로 막아내는 원조 아이언맨이었다. 차력인가? 마법인가? 정신력인가? 그의 드라마틱한 죽음의 전설이 서려있는 짜오퍼쁘라뚜파를 위한 사당은 람빵에서 파야오 가는 길목, 그의 고향인 응아오งาว 조금 못미쳐 위치하고 있다. 시기는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 난팁창이 등장한 때로 아마도 그와는 아는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고.. 2022. 2. 23. 쿤 크루아의 치앙마이 침공 - 조카야~ 물러나라! 망라이가 죽고, 1318년 파야 차이쏭크람이 치앙라이로 돌아가면서 그의 장남 타오 쌘푸(41세) 치앙마이를 맡긴다. 천성이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타오 쌘푸였다. 란나 2대 왕위는 둘째 파야 차이쏭크람에게 갔으나, 망라이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천성이 포악하고 예의 따위는 쌈싸먹다가 므앙 나이(몽 나이)로 쫓겨난 쿤 크루아! 차이쏭크람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쌘푸가 상징성이 강한 치앙마이를 맡게 되자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삼촌의 반란! 1년이 지난 1319년, 쿤 크루아는 므앙 나이의 군대 1만명 이상을 이끌고 치앙마이로 온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할텐데... "조카야,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할아버지 망라이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왜 나에게는 전하지 않았느냐. 섭섭하구나. 내 이제야 알았.. 2022. 2. 16.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