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망라이73

망라이가 벼락을 맞아 죽은 이유(저주의 이유) 1311년(또는 1317년) 시장을 둘러보다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망라이, 사람들은 망라이가 벼락을 맞을 만한 일을 해서 죽었다고 하는데 어떤 일이었을까? 1. 1275년 벌어진 장남 쿤 크르앙을 반란 혐의로 자신이 있는 팡으로 불러오면서 중간에 부하를 시켜 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쿤 크르앙의 엄마이자 망라이의 부인인 우아밍 위앙차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이 부인을 슬프하게 사건이 더 일어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의-장남-쿤-크르앙의-반란?category=1022436 2022. 3. 24.
팡을 건설하는 망라이 이 벽화부터는 다양한 헤어 스타일이 보인다. 다양한 헤어 스타일은 다양한 지역 출신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는 주변을 정복하거나 복속하는 과정에서 데리고 온, 잡아 온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 땅은 넓어도 경작하거나 공사를 할 노동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정복전쟁을 하며 무엇보다 필요한 그 노동력을 빼앗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 지면 강제 이주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지는 시절이었다. 2022. 3. 23.
망라이, 요녹 지역을 통합해 나가다. 주변을 복속하며 요녹을 통합해 나가는 망라이, 앞의 그림들과 헤어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의 망라이 부대는 머리를 묶어 단정하게 한데 반해 이 그림에서의 헤어스타일은 거칠어 보인다. 얼굴의 윤곽도 조금 다른데 아마도 다른 지역 사람들을 나타내기 위함인 듯 하다. 제대로 줄도 안맞추고 누군가 보란 듯이 장난을 치는 모습, 군기가 쎄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망라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라와족과 따이족간에 헤어 스타일과 의복이 서로 마음에 안들어 싸웠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짜마테위-등장-전-치앙마이-주변-거주인들은-누구?category=1004160 짜마테위 등장 전 치앙마이 주변 거주인들은 누구? 짜마테위와 함께 .. 2022. 3. 23.
망라이, 치앙 뚱을 건설하다. 벽화가 있는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은 1267년 치앙 뚱을 건설하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연도는 일단 무시하고 치앙 뚱의 모습만을 주목해보자. 치앙 뚱은 현재 버마의 켕퉁을 말하는 지역으로 씹썽빤나(치앙룽)과 치앙라이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망라이가 치앙 뚱을 건설하는 모습이라고는 하나 실제 망라이 이전부터 세력을 형성하며 성벽이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복 후 개보수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치앙-뚱เชียงตุง-켕퉁-짜잉-똥과-망라이 치앙 뚱(เชียงตุง, 켕퉁, 짜잉 똥)과 망라이 최근 태국, 라오스 북부, 중국 남부 그리고 미얀마 동부에 위치한 치앙 뚱을 관심갖고 보고 있던 중 망라이 이야기.. 2022. 3. 22.
불상을 옮기던 수레가 부러져 세운 역사 깊은 사원-왓 프라짜오 멩라이 왓 프라짜오 멩라이วัดพระเจ้าเม็งราย, 망라이가 아닌 멩라이 사원, 멩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이 사원의 역사가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망라이가 "치앙마이 건설 후" 처음 세운 사원이 왓 치앙만วัดเชียงมั่น이다. 만มั่น 안정, 견고하다, 튼튼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사원, 치앙마이의 안정을 바라며 세운 사원인 것이다. 안정 후에는 번영을 염원하는 사원을 세웠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1296년 왓 치앙만을 건설한 후 같은 해 세 번째로 세워진 사원이 바로 이 왓 프라짜오 멩라이다. 그런데 왜 사원 이름이 뜬금없이 프라짜오 멩라이인가? 1296년 위앙 꿈깜에 있던 망라이의 키와 같은 크기로 만든 불상을 왓 치앙만으로 이동 중.. 2022. 3. 22.
망라이, 남쪽으로 세력 확장을 계획하다. 그림에 보이는 인물들은 상인들이었을까. 여러 소문을 들으며 망라이는 남쪽으로 계속하여 세력 확장을 꾀한다. 오른쪽의 망라이는 먼 곳을 응시하며 무언가 동경하는 듯한, 계획하는 듯한 모습이다. 2022. 3. 21.
망라이 치하의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망라이의 세력 안으로 주변 도시들이 들어오며 망라이의 영향력은 커져간다. 망라이 영향력 아래 있는 주민들의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머리를 감고, 담배를 피고, 춤을 춘다. 나무 계단에 앉은 여자에게 선물을 주며 구애하는 남자의 그림일까? 왼쪽 아래의 여자는 저 남자를 좋아하는데, 저 남자는 계단에 앉은 여자를 좋아하고? 모이를 쪼아대는 닭들도 눈에 띈다. 2022. 3. 20.
응언양 병사들의 전투 장면 온 몸에 문신을 한 병사들이 방패와 칼, 창 등으로 무장을 한 후 전투를 벌이고 있다. 말을 탄 인물이 보이고, 활과 화살도 보이는 가운데 긴 막대기를 입으로 가져가 독침을 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말을 타고 있거나 선두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호령하는 듯한 인물도 있다. 중간 중간 미소를 띈 병사는 전투가 즐거웠나보다. 2022. 3. 19.
망라이, 응언양 25대 왕이 되다. 1259년 아버지 라오 멩이 죽고 망라이가 25대 응언양의 왕이 된다. 치앙마이 연대기에는 응언양 1대 라오 쫑부터 대대로 내려오며 왕권을 상징하는 4가지 보물이 있다고 나오는데, 1. 위 사진에 보이는 검 2. 창 3. 씨칸차이 단검 그리고 4. 상서로운 보석이다. 위 그림은 그 중에서 1번 영광의 검이 아닌가 싶다. 뒤쪽으로는 방패와 칼 그리고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보인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라와족과-개를-앞세우며-진행된-란나-왕위-즉위식?category=1031475 라와족과 개를 앞세우며 진행된 란나 왕위 즉위식 란나 9대 왕 띨로까랏까지 이야기가 진행 중으로 왕이 바뀔 때마다 즉위식을 했을텐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마다 1. .. 2022. 3. 1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