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1년(또는 1317년) 시장을 둘러보다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망라이,
사람들은 망라이가 벼락을 맞을 만한 일을 해서 죽었다고 하는데 어떤 일이었을까?
1. 1275년 벌어진 장남 쿤 크르앙을 반란 혐의로 자신이 있는 팡으로 불러오면서 중간에 부하를 시켜 죽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쿤 크르앙의 엄마이자 망라이의 부인인 우아밍 위앙차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런데 이 부인을 슬프하게 사건이 더 일어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의-장남-쿤-크르앙의-반란?category=1022436
2. 1282년(또는1292년) 망라이는 하리푼차이를 공격하여 점령하는 과정에서 하리푼차이를 불태운다. 이때 왕궁도 같이 불태우는데, 662년 짜마테위가 하리푼차이로 올 때 롭부리에서 가져 온 백불상(프라깨오카오พระแก้วขาว, 프라쎄땅카마니พระเสตังคมณี)이 있는 불당도 태우게 되는데 이로 인해 벼락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짜마테위와-함께-하리푼차이로-온-전문가들은-누구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의-죽음-치앙마이-시장-한-가운데서-벼락을-맞다
3. 망라이가 버마의 바고(빠이코)를 공격하러 갔을 때 전쟁은 벌어지지 않고, 바고에서 망라이에게 바고의 딸, 낭 우싸 빠이코 นางอุสาปายโค와 선물들을 주며 화친을 맺게 되는데 역시 이로 인해 본부인 우아밍 위앙차이의 분노를 사게 된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겪으며 우아밍 위앙차이는 위앙꿈깜의 사원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내게 된다.
4. 위앙 꿈깜에서 왓 치앙만으로 가져가던 불상이 가는 도중 수레가 부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자리에 사원을 건설하게 되지만 아무튼 이 사건도 망라이가 벼락을 맞는 사건의 하나가 된다고 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불상을-옮기던-수레가-부러져-세운-역사-깊은-사원-왓-프라짜오-멩라이
그 외에도 더 있을 수 있지만 위의 이유들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망라이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테고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하기에 찾아 붙여진 이유들일 것이다.
어쩌면 망라이가 벼락을 맞을 만한 상황이
자식을 잃고 위앙 꿈깜 사원에 들어가 죽은 우아밍 위앙차이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치앙마이나 위앙꿈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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