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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야깨오3

란나 11대 파야 깨오 - 상한 말고기를 먹고 죽다. 독살? 므앙 싸맛으로 유배된 엿 치앙라이의 뒤를 이어 1495년 14세에 왕위에 오른 파야 깨오พญาแก้ว, 그는 2년 후인 1497년 왓 부파람วัดบุพพาราม을 세우는데 그때 상서로운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https://youtu.be/J96cBNJg3os 상서로운 지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지진은 1년 후인 1498년 있었다고 하는데, 1497년 공사를 시작하여 1498년 완공하면서 완공식을 할 때 발생한건가? 상서로운 지진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지진 피해는 거의 없는 정도의 미진으로 참석자들이 모두 약간의 떨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어 그는 쑤코타이, 아유타야와도 계속 전투를 이어갔다. 아유타야의 프래, 난 공격과 란나의 쑤코타이, 찰리앙, 깜팽펫 공격 등 서로 열.. 2022. 9. 14.
중국 허ห้อ 여인을 더 사랑한 10대 엿 치앙라이, 추방되다. 1487년, 1441년 아버지 쌈팡깬을 유배보내고 왕위를 차지한 후 46년간 동서남북 전쟁터를 누비며 란나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띨로까랏은 1447년 세상을 떠난다. 그럼 다음 왕위는? 10대 왕이 되어야 할 띨로까랏의 아들 타오 분르앙은 이미 1465년 반란혐의로 처형된 상황이었다. 처형되기 전 타오 분르앙은 치앙라이를 다스리며, 아버지 띨로까랏을 따라 전쟁터를 누비며 활약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있었으니 타오 엿 치앙라이이다. 엿 므앙ยอดเมือง이라고도 불리는 엿 치앙라이ยอดเชียงราย는 므앙 너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는데 므앙 너이가 아닌 치앙라이의 산꼭대기에서 태어났기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망라이의 도시, 치앙라이에서 태어난 엿 치앙라이, 그가 바로 란나의 10대 왕,.. 2022. 9. 8.
란나의 유배지들과 빠이 옆 동네 므앙 너이เมืองน้อย 망라이 큰 아들 쿤 크르앙은 아버지 망라이에게 대들었다(?) 므앙잉(위치 불명)에서 살해당하고 셋째 쿤 크루아는 문제를 많이 일으켜 치앙 뚱(켕퉁)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장남은-프라오에서-죽었나-왓-꾸위앙잉วัดกู่เวียงยิง?category=1003198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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