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쇠퇴기

란나 11대 파야 깨오 - 상한 말고기를 먹고 죽다. 독살?

by ChaoKaoli 2022. 9. 14.
반응형

므앙 싸맛으로 유배된 엿 치앙라이의 뒤를 이어 1495년 14세에 왕위에 오른 파야 깨오พญาแก้ว,

그는 2년 후인 1497년 왓 부파람วัดบุพพาราม을 세우는데 그때 상서로운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https://youtu.be/J96cBNJg3os

상서로운 지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지진은 1년 후인 1498년 있었다고 하는데,

1497년 공사를 시작하여 1498년 완공하면서 완공식을 할 때 발생한건가?

상서로운 지진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지진 피해는 거의 없는 정도의 미진으로 참석자들이 모두 약간의 떨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어 그는 쑤코타이, 아유타야와도 계속 전투를 이어갔다.

아유타야의 프래, 난 공격과 란나의 쑤코타이, 찰리앙, 깜팽펫 공격 등 서로 열심히 치고 받으며 싸웠다.

 

더불어 파야 깨오는 1516년부터 1518년까지 치앙마이 성벽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현재 치앙마이의 타패, 창프악 등이 있는 성벽만이 아니고 하이야 지역의 외부 성벽도 공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마도.. 이다.

 

파야 깨오의 아버지 엿 치앙라이가 므앙 싸맛(므앙 너이)로 유배된 지도 10년, 

엿 치앙라이는 유배지에서 죽게 되고,

파야 깨오는 므앙 싸맛으로 가 아버지 장례와 함께 쩨디를 세우고 치앙마이로 돌아온다.

 

이후 므앙 너이, 이 도시는 한 번 더 등장하게 된다.

 

치앙마이 연대기에 따르면

1524/1525 치앙 르악에 홍수가 나서 씨 품 시장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이듬해인 1526년 2월 7일, 말고기 육회를 먹은 파야 깨오는 구토와 함께 죽고 만다. 

그의 나이 44세, 

치앙마이 주민들은 익사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지 못해 죽은 것으로 생각했을까?

 

상한 말고기 육회라 하는데,

상한 말고기를 먹고 구토와 함께 바로 죽었을까?

 

그리고 1526년 2월 5일,  귀족들은 므앙 너이에 살고 있던 엿 치앙라이의 아들이자 파야 깨오의 동생을 왕위에 앉힌다.

그가 바로 란나 12대 왕인 파야 껫쳇타랏พญาเกสเชษฐราช(19세)이다.

프라 므앙껫끌라오พระเมืองเกษเกล้า라고도 한다.

 

잉???

그런데 날짜가 무언가 이상하다.

파야 깨오가 말고기를 먹고 죽은 후가 아닌 파야 깨오가 죽기 이틀 전이다.

 

뭐지??

 

1. 말고기를 먹고 죽기 이틀 전, 

"귀족들이 " 므앙 너이에 있던 파야 깨오의 동생을 란나의 12대 왕으로 추대했다.

2. 그리고 이틀 후 말고기를 먹은 파야 깨오가 죽는다.

 

란나의 왕에게 우연히도 상한 말고기가 준비되어

이를 먹은 왕이 바로 죽었다???

 

암살? 

독살?

 

독살 기록이나 이야기는 보지 못했으나 

그게 아니면 뭐로 설명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란나의 전성기는 이 사건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웹 검색을 하다보면,

껫쳇타랏이 파야 깨오의 아들이라고 나온다.

치앙마이 연대기에는 파야 깨오의 동생이라고 나오고,

1497년생으로 1526년 19세에 왕으로 추대되나 30세가 되어서야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1482년생인 파야 깨오와는 15살 차이로,

1497년이면 1495년 14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16세에 나은 아들이 되고,

1456년생인 엿 치앙라이의 아들이라면, 

엿 치앙라이가 41살에 나은 자식이 된다.

 

그런데, 

만약 껫쳇타랏이 파야 깨오의 아들이라면,

계속하여 오지이자 유배지인 므앙 나이에 살고 있었을까?

 

파야 깨오의 동생이라면 왕권의 안정을 위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아들이라면 계속하여 므앙 나이에 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치앙마이로 부르지 않는다해도 치앙라이, 치앙쌘이나 람빵, 프라오 등을 맡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치앙마이 연대기를 따라 파야 깨오의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귀족들은 란나 11대 왕인 파야 깨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쫓아낼 구실만 찾던 중,

엿 치앙라이의 부인이자 파야 깨오의 어머니인 낭 뽕노이의 반대로 해결이 어려워지자,

쫓아내기보다 그를 죽이기로 하고,

한 무리는 먼저 그가 죽은 후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므앙 나이에 살고 있는 그의 동생 껫쳇타랏과 접촉하여 "네가 다음 왕이다"라고 여러 관료들과 함께 비밀리에 왕으로 추대를 하고,

다른 한 무리는 왕궁의 요리사 중 일부를 비밀리에 자신들의 요리사로 교체한다.

귀족들의 평소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던 파야 깨오였기에 독을 타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특별히 최고급 육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래? 아주 맛나 보이는구나. 네가 먼저 먹어보거라"

 

아주 맛있게 먹는 요리사, 

안심한 파야 깨오는 말고기를 먹게 되고,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구토를 시작하며 어의를 부를 틈도 없이 죽고 만다.

 

말고기에는 이상이 없었다.

독은 바로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씻는 물에 담겨있어 손을 씻는 과정에서 손에 독이 묻어있었던 것이다.

 

....라고 혼자 그렇게 생각해 본다. ㅋㅋㅋㅋ

 

아무튼 상한 말고기를 먹고 죽었다고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