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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치앙마이 건설까지

삼국 동맹 1 - 란나 망라이, 파야오 응암므앙 그리고 쑤코타이 람캄행

by ChaoKaoli 202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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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시내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3왕 상일 것이다.

란나의 망라이, 파야오의 응암므앙 그리고 쑤코타이 람캄행 3왕으로 모두 우정의 맹세를 한 사이다.

특히 응암므앙과 람캄행은 당시 몬족 불교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롭부리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라고 한다.

망라이는 함께 했다고도 하고, 안했다고도 하는데

망라이는 응암므앙과 친척, 친구 사이로 응암므앙을 통해 람캄행을 알게 된 사이로 보인다.

 

 

망라이와 응암므앙이 1238년생, 람캄행이 1239년생이다. 

물론 연도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람캄행이 한 살 어린데...

 

"나 빠른 39년이야"

 

파야오*는 응언양의 20대 왕 라오 응언 루앙의 둘째 아들 쿤 쫌 탐이 1094년** 도이 두안과 잉 강 น้ำแม่อิง부근에 세운 나라이다. 산과 강은 필수 조건이다.

쿤 쫌 탐의 형은 쿤 친으로 21대 라오 친이 되고 이어 25대 망라이로 이어진다.

그러니 망라이와 응암므앙은 먼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부모형제자매도 소용없는데 먼 친척이라고 해야 별거 아니지만

망라이와 응암므앙의 부인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 두 나라의 관계는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 두 사람은 나이도 같고 서로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며 그 우정을 이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우정 맹세를 하기 전인 1276년,

망라이는 "파야오를 먹어볼까" 하며 치앙라이와 파야오의 경계 반 다이라는 곳으로 진격하여 캠프를 차린다.

소식을 들은 응암므앙도 "그래 한 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군대를 이끌고 반 다이에 도착하여 대치하게 된다.

하지만 두 왕은 결국 싸우지 않는 대신 서로 화해를 하고 돈독한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응암므앙은 평화를 사랑하는 관대한 왕으로 불볕 더위나 강한 폭우도 피해가는 왕이라고 한다. 

응암므앙은 기쁜 마음으로 망라이에게 500가구 정도 있는 한 지역을 망라이에게 주며

전쟁으로 이어질 듯한 국면은 마무리된다. 

(국경 일부 지역을 주었다고도 한다.

당시 망라이의 세력이 더 강력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이다.)

 

국경지역 일부를 망라이에게 떼어주는 대신 응암므앙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뿌아(지금의 난 지역)를 점령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맡긴다. ***

난 연대기에는 당시 응암므앙의 전성기로 파야오와의 힘겨운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파야오는 푸캄야오, 푸야오 또는 도이 두안 등으로 불리웠다.

* 11세기 말에 세워졌다고도 하는데, 쿤 쯔앙이 활약한 연대를 고려하면 1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 이 난 연대기에 나오는 응암므앙의 부인 이야기에 응암므앙의 부인과 람캄행의 바람 사건 사실 유무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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