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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치앙마이 건설까지

망라이는 왜 치앙마이를 선택했을까?

by ChaoKaoli 2022.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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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도시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중인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하리푼차이에 2년, 위앙 꿈깜에 4년을 머물렀다고 하는데,

왜 굳이 거기서 가까운 지역에 다시 도시를 건설했을까?

거침없이 주변을 정복해 나가고 있었는데,

왜 더 멀리 나가지 않고?

 

하리푼차이는 일단 망라이가 세운 도시가 아니니 계속 머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2년 후 쿤 파에게 물려주고,

다른 지역을 찾아보았을 것이다.

 

위앙 꿈깜, 그 다음 이동한 도시인데,

사실 람푼 하리푼차이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아니다.

치앙쎈, 치앙라이, 팡 등의 이동을 고려하면 너무 가깝다.

 

아무튼 그 지역에 머물다 우기 때마다 찾아오는 홍수에 다른 지역을 찾게 되었다고 하는데,

멀리 떨어진 지역이 아닌 치앙마이, 

전설이나 기록에 사냥여행을 겸하여 둘러보다 발견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몰랐을까?

그 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까?

그 좋은 지역이라는데...???

 

하리푼차이를 공격한 이유로,

하리푼차이의 경제력, 상인들의 활발한 거래에 따른 부유함을 듣고난 후이다.

 

단지 몽고의 공격을 피해 남으로 이동하려고 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무역! 

 

 

사진 출처:https://www.chiangmainews.co.th/page/archives/976123/

 

하리푼차이의 위치적 장점은 삥강을 따라 현재의 방콕까지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루트

그리고 다시 북으로 중국까지도 이어지는 루트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위치였다.

망라이가 공격할 때 하리푼차이는 몽고에 도움을 청할 정도로 이미 상호간에 관계가 있었음을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북부의 최강국 란나였던 만큼 란나의 중심지로 돈, 물건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망라이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망라이는 그러한 위치적 장점을 결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그러한 무역의 중심지로 호황을 이루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출처:https://www.photodharma.net/

 

그러하기에 하리푼차이나 위앙 꿈깜의 크기가 그의 경제적 야심에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위치적 장점을 가지면서 조금 더 넓은 지역, 조금 더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선택하려 하였을 것이기에

쑤코타이와 파야오의 두 친구들의 의견을 구해 신중하게 선택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당시 

더 동쪽으로는 파야오가 있고,

더 남쪽으로는 또 쑤코타이가 있으니 선택할 수 있는 위치로는 최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1. 몽고의 남침을 대비하면서

2. 동쪽의 파야오, 남쪽의 쑤코타이와 다툼이 생기지 않을 만한 위치

3. 배산임수의 지역으로 방어에 유리하면서 하리푼차이보다는 넓은 지역

4. 홍수의 피해가 덜한 지역(위앙 꿈깜의 경험)

5.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동서남북으로 무역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치앙마이를 선택하게 하였을 것이다. 

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 이에 대해 반론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쑤마떠สุมาเต๊อะ짜오~ 네 생각이 맞을 것이다 라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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