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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초기 혼란기

망라이 당시 란나의 영토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by ChaoKaoli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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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언양 15대 왕인 망라이는 본거지를 치앙라이, 팡, 하리푼차이, 위앙꿈깜 그리고 치앙마이로 옮기면서 

란나의 1대 왕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부터 국호를 란나로 한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망라이부터 응언양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어서였을까? 

아니면 라와짱까랏 계열과 구별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가 아니라 관련 연구자들이... 

 

주변 지역을 먹고 나서는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도록 왕자, 친족 또는 믿을 수 있는 귀족들을 보내거나 해당 지역 왕을 그대로 통치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하였는데 그가 보낸 사람들을 통해 그의 영토를 추정해볼 수 있다.

사실 영토를 현재의 지도 영역처럼 구별할 수는 없다.

그 정도로 딱딱 지역 구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실제 점령했다고 해도 말만 점령일 수 있으며, 점령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명성을 두려워하여 머리를 수그리는 지역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치앙마이 연대기에 나온 지역으로는

1. 치앙라이, 팡, 치앙다오, 프라오, 치앙 콩, 므앙 씽, 람푼이 있고,

2. 미얀마 샨지역 므앙 나이로 그의 막내 쿤 크루아를 보냈다. (추방 유배지 성격)

3. 치앙 뚱 연대기에서는 망라이가 치앙 뚱을 점령한 후 파야 차잉쏭크람의 아들인 손자 타오 남투암을 치앙 뚱으로 보냈다. (남투암이 죽은 후 동생 남난이 그 뒤를 잇는다)

4. 치앙라이는 자랑스러운 둘째 쿤 크람을 보내 다스리게 하면서

란나의 북부는 치앙라이를 중심으로 

란나의 남부는 자신이 있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관리하게 된다.

파야 쌘푸가 치앙 쌘을 건설하면서 북부의 중심은 치앙라이에서 치앙쌘으로 옮겨간다.

5. 켈랑 파야 벅과의 전투승리로 그의 영역은 켈랑, 지금의 람빵까지 확장된다.

 

현재 미얀마 지역으로 북부의 샨 지역은 란나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생각되나,

미얀마 중남부 지역에 있는 푸캄-아바, 바고 등은 망라이의 위세에 눌려 평화 협상을 통해 직접적인 전투상황없이 평화협상을 통해 유지되었다. 따라서 이들 지역을 란나의 영토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딱과 매솟, 핏싸눌록은 쑤코타이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고,

그러한 쑤코타이와 파야오의 세력 범위를 제외하고,

라오스 지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미얀마 중남부와는 커다란 산맥이 자연 국경 역할을 했을테니 제외하고,

미얀마 북부 지역은 므앙(몽)으로 이름붙여진 곳들 그리고 켕뚱과 어머니의 나라 치앙 룽을 포함한 지역을 망라이 시대 란나의 영역으로 표시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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