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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초기 혼란기

1대 파야 망라이부터 4대 파야 캄푸까지의 연도 개괄

by ChaoKaoli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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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년 망라이 죽음

1317년 파야 차이쏭크람 치앙라이로 이동

1318년 쌘푸 치앙마이 위임(쌘푸 41세)

1319년 쿤 크루아의 반란-치앙마이 점령

1319년 쌘푸의 피신

1322년 팡에 있던 타오 남투엄의 삼촌 쿤 크루아 진압

1322년 타오 남투엄 치앙마이 위임

1324년 타오 남투엄 치앙 뚱(켕뚱)으로 추방- 치앙 뚱의 왕이 됨

 

일련의 사건 후,

파야 차이쏭크람은 치앙마이를 다시 쌘푸에게 맡긴다. 쌘푸를 특히 아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쿤 크루아는 오해 또는 혐의를 씌어 쫓아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삼촌 쿤 크루아의 침입 소식을 듣자마자 가족과 재산을 갖고 창프악 게이트를 통해 피신 아니 도망한 쌘푸이기에 치앙마이 백성들이 생각하는 쌘푸의 이미지는 결코 좋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쿤 크루아의 성격상 인자하거나 백성을 생각하는 지도자는 아니었을테고, 함께 온 샨족 역시 점령군으로서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건 안봐도 비디오.

 

그렇게 1325년 치앙마이는 다시 쌘푸에게 맡기면서 란나 3대 왕의 자리도 쌘푸에게 넘긴다. 

그리고 2년 후 1327년 차이쏭크람은 63세에 치앙라이에서 생을 마감한다. 

차이쏭크람은 치앙마이보다 치앙라이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망라이가 치앙마이를 건설한 후 아직 치앙마이는 란나의 중심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치앙라이가 중심이 되고 있었다.

치앙라이에서 생을 마감한 차이쏭크람에 이어 쌘푸도 한달간 치앙라이에서 차이쏭크람의 장례를 치르고는 그대로 치앙라이에 머문다.

그리고 1328년 치앙마이는 아들 캄푸에게 맡기는데 이때 캄푸의 나이 26세이다.

1334년 쌘푸의 죽음과 함께 란나 4대 왕위는 아들 캄푸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캄푸는 겨우 2년을 다스렸을 뿐 생각지도 못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제 2대 차이쏭크람에 이어 3대 쌘푸의 치앙쌘 건설 이야기와 4대 캄푸의 죽음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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