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라이가 죽고,
1318년 파야 차이쏭크람이 치앙라이로 돌아가면서
그의 장남 타오 쌘푸(41세) 치앙마이를 맡긴다.
천성이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타오 쌘푸였다.
란나 2대 왕위는 둘째 파야 차이쏭크람에게 갔으나,
망라이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천성이 포악하고 예의 따위는 쌈싸먹다가 므앙 나이(몽 나이)로 쫓겨난 쿤 크루아!
차이쏭크람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쌘푸가 상징성이 강한 치앙마이를 맡게 되자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삼촌의 반란!
1년이 지난 1319년,
쿤 크루아는 므앙 나이의 군대 1만명 이상을 이끌고 치앙마이로 온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할텐데...
"조카야,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할아버지 망라이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왜 나에게는 전하지 않았느냐.
섭섭하구나. 내 이제야 알았도다.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할터이니 내 이제 가서 나의 아버지에게 조의를 표할 것이다."
쌘푸는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신하들에게 말한다.
"나의 삼촌이 할아버지 조의를 표하고자 온다고 한다.
나의 삼촌을 의심하지 말고 그가 온다면 언제든 성문을 개방토록 하여라"
소식을 들은 쿤 크루아는 회심을 미소를 짓고는 위앙 꿈깜에 그의 진지를 구축한다.
망라이가 켈랑과 싸울 때 치앙마이에서 소집한 군인들이 20만명 이상이 있었으니,
쿤 크루아가 만명 이상의 군인들을 데리고 왔다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밤이 되자 쿤 크루아는 위앙 꿈깜에서 군대를 나누어 각각 치앙마이 게이트와 쑤안독 게이트에 배치한다.
이 소식을 들은 쌘푸는
"삼촌의 군대와 싸울 수는 없다. 만약 삼촌이 이긴다면 나를 죽일 것이요. 우리가 이긴다면 삼촌을 죽여야할 것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겠다."라고 하고는 그의 모든 소유물을 갖고는 후아 위앙(창프악) 성문을 통해 치앙 쏨으로 탈출하였다.
착하나 나약한 성품의 쌘푸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소유물인 코끼리, 말, 노예, 금은보석 등을 모두 가지고 갔다고 하니,
단지 그의 나약함만 드러났을 뿐이다.
쿤 크루아는 그의 므앙 나이 군대와 치앙마이에 무혈입성한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팡에 있던 쌘푸의 동생 타오 남투엄은 형을 아버지 차이쏭크람이 있는 치앙라이로 보내고 그간의 상황을 알린다.
파야 차이쏭크람은 "므앙 나이까지 쫓겨났던 놈이 무슨 염치로 돌아와 그딴 짓을 저지르는지 도무지 이해못할 놈이로다. 어려서부터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이 나쁜 짓만 골라 하더니 내 이번에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남투엄! 너에게 내 군대를 보내줄테니 치앙마이로 가서 그 놈을 사로 잡거라!"
이때가 1321년 2월 28일 토요일이었다.
남투엄은 "아바마마 걱정은 붙들어 매십시요. 평소에도 삼촌은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차였습니다. 기필코 삼촌을 사로잡도록 하겠습니다!"
타오 남투엄은 그 길로 군사를 이끌고 치앙마이로 진격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군사들에게 상인으로 변장하여 각각의 바구니와 짐 속에 무기를 숨겨 4개의 성문 각각으로 진입하게 한 후 성문을 열어 치앙마이 전체를 포위한다.
그때 쿤 크루아를 포함한 므앙 나이 군사들은 흥청망청 술에 취해 나자빠져있었다.
기회를 노리던 남투엄은 징과 북 등으로 큰 소리를 내며 전군에 일제 공격 명령을 내린다.
"공격 개시! 쿤 크루아는 생포하라! 그를 절대 놓치지 말라!"
초저녁부터 취해있던 쿤 크루아는 화들짝 놀라 깨어나며 부하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없었다.
타오 남투엄의 치앙마이 재탈환 작전은 큰 어려움없이 성공했던 것이다.
그렇게 쿤 크루아는 조카에게 잡혀 남서쪽 구석으로 보내져 믄 르엉มื่นเรือง(깜므앙 믄 후엉มื่นเฮือง)을 시켜 관리 감독하게 한다. 쿤 크루아는 명색이 왕족인지라 일반 죄수들과 같이 가두어 둘 수는 없었고 나름 대우를 하기 위해 믄 루엉의 집에 가두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자택감금이다.
이곳에는 나중에 믄 후엉이 죽은 후 그의 유골을 보관하는데,
그의 이름을 따 이곳 치앙마이 성벽 남서쪽 구석을 쨍꾸흐엉แจ่งกู่เฮือง이라 한다.
믄 루엉의 깜므앙 발음은 믄 후엉이다.
쿤 크루아는 4년 투옥된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치앙마이 탈환 소식을 들은 차이쏭크람은 타오 남투엄에게 치앙마이를 맡긴다.
1319년 치앙마이가 쿤 크루아에게 점령된 후 3년이 지난 1322년의 일이다.
타오 남투엄의 시대가 온 것인가? 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그가 치앙마이를 다스린 기간은 고작 2년으로 1324년, 아버지 차이쏭크람에 대한 반역혐의로 치앙 뚱(켕퉁)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때 일부 귀족들이 남투엄의 반역을 고자질했다고도 하는데, 실제 조사에서는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아무튼 차이쏭크람은 그를 막내 쿤 남난(쿤 응와)를 시켜 치앙 뚱(켕퉁, 므앙 켐)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리고 쿤 남난을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때 타오 남투엄은 맨몸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고 모든 편의를 제공받으며 쫓겨나는데 이를 고려하면, 실제 반란이 있었는지 또는 모의가 밝혀졌던 것인지 등이 확실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초기 혼란기라고 생각하고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치앙 뚱에서 타오 남투엄은 환대를 받는다.
이는 마치 쿤 크루아가 므앙 나이로 쫓겨났을 때 그곳에서 받았던 것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위대한 왕 차이쏭크람의 혈육이다. 우리는 그를 우리의 왕으로 삼아야 한다." 하며 그를 치앙 뚱의 왕으로 삼는다.
이때부터 치앙 뚱에서는 망라이 혈족이 왕위를 세습하게 되는데,
타오 남투엄이 죽은 후에는 동생 타오 남난이 뒤를 잇는다.
치앙 뚱에서는 쿤 대신 싸오를 써야 하려나, 싸오파 남투엄, 싸오파 남난(싸오파는 짜오파의 치앙 뚱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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