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프라짜오 멩라이วัดพระเจ้าเม็งราย,
망라이가 아닌 멩라이 사원, 멩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아 이 사원의 역사가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망라이가 "치앙마이 건설 후" 처음 세운 사원이 왓 치앙만วัดเชียงมั่น이다.
만มั่น 안정, 견고하다, 튼튼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사원, 치앙마이의 안정을 바라며 세운 사원인 것이다.
안정 후에는 번영을 염원하는 사원을 세웠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1296년 왓 치앙만을 건설한 후 같은 해 세 번째로 세워진 사원이 바로 이 왓 프라짜오 멩라이다.
그런데 왜 사원 이름이 뜬금없이 프라짜오 멩라이인가?
1296년 위앙 꿈깜에 있던 망라이의 키와 같은 크기로 만든 불상을 왓 치앙만으로 이동 중에,
불상을 싣고 가던 수레의 나무 받침들이 부식되어 부러지면서 불상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망라이의 키와 같은 불상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훠~얼~씬 큰 5미터 40cm 정도의 크기이다.
이는 아마도 아침이나 저녁 빛을 받아 생긴 그림자의 크기가 가장 클 때를 기준으로 가능한 크게 작업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본 망라이 "웁스! 하필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라며
이 자리에 사원을 짓게 하고 그 불상을 안치한다.
위앙 꿈깜에서 왔으니 치앙마이 게이트를 통과했을테고
직진 길은 당시에 없었나? 아무튼 살짝 왼쪽으로 갔다가 망라이가 벼락맞아 죽은 삼왕상 부근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하니 그 부근으로 하여 가려고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세워진 이 사원의 이름은,
1967년 사원 수리 중 불상 아래서 발견된 은색 용기ผอบเงิน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왓칸컷วัดคานคอด, 란나어(깜므앙)로 왓깔라껏วัดกาละก้อด 또는 왓 깔라껏วัดก๋าละก้อด이다.
나무 받침(지레)이 부식되어 부러진 사원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는 왓 씨싸러이타쨍วัดศรีสร้อยท่าแจ่ง 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위앙 꿈깜에서 가져오던 불상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 망라이가 벼락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벼락을 맞는 이유가 여럿이었던 우리의 망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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