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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치앙마이 건설까지

치앙 뚱(เชียงตุง, 켕퉁, 짜잉 똥)과 망라이

by ChaoKaoli 202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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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국, 라오스 북부, 중국 남부 그리고 미얀마 동부에 위치한 치앙 뚱을 관심갖고 보고 있던 중 망라이 이야기가 나와 잠시 간략하게 정리하고 차후 란나와 함께 다루어 볼 생각이다.

 

치앙 뚱เชียง ตุง, 켕퉁, 짜잉 똥, 징똥으로도 불리는 치앙 뚱은 

망라이가 치앙라이로 이전한 후 점령하게 된 곳인데, 

이곳 역시 원주민은 라와(루아)족이라고 한다.

 

치앙마이, 람푼 하리푼차이의 전설과 비슷하게 이곳도 부처님의 방문이 있게 된다.

태국 북부에서 부처님 이야기가 있는 곳은 흐름이 비슷한데 부처님의 여행 중 라와족 사람을 만나게 되고 

라와족 사람이 부처님에게 먹을 곳을 드리고 부처님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남겨주면서 예언을 하게 된다.

부처님 머리카락 남아나지 않을 듯...

 

치앙 뚱에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가 마르게 되면 이곳에 도시가 생기면서 아주 번영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그리고는 중국의 한 왕자이자 수도자(르씨)인 뚱카가 등장하여 도시를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치앙 뚱" 뚱의 도시, 뚱카부리ตุงคบุรี !

 

그리고 이어 1267년 망라이가 점령하면서 망라이의 직계혈족이 왕위를 이어가게 된다.

치앙마이는 16세기 버마의 침략으로 망라이 왕조가 끊기지만 이곳은 19세기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치앙 뚱 건설 1267년
파댕 성문 사진 출처 : https://www.photodharma.net

 

라와족의 도시였을 때 치앙마이의 위앙쩯린과 유사하게 원형의 성벽도시로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성문은 모두 12개, 하지만 지금은 하나가 남아있는데 그것이 바로 빠뚜 파렝이다.

 

망라이의 점령 후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60여년이 지난 후이다.

 

망라이가 죽고 둘째 차이 쏭크람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고

이어 그 아들 쌘푸에게 치앙마이를 맡기고 치앙라이로 가 있는 동안

차이 쏭크람의 동생이자 문제아로 버마 몽나이로 쫓겨나 있던 쿤 크루아가 치앙마이로 와서 조카 쌘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1319년

왠지 쌘푸는 평화주의자 이미지인데 암튼 쌘푸는 다툼을 싫어하여 창프악을 통해 동생 남투엄이 있는 팡으로 피신하게 되고 이어 아버지 차이 쏭크람에게 알리게 되고,

쏭크람은 열혈남아의 이미지로 불같이 화를 내며 남투엄을 시켜 쿤 크루아를 사로잡으라고 명령을 내리고 남투엄은 명령을 충실히 이해한 후 삼촌 쿤 크루아를 잡아 가두고 상으로 치앙마이를 맡게 된다.

하지만 5년 후인 1324년 알력 다툼이었을까, 왕위까지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쏭크람은 아들 남투엄를 치앙 뚱(켕퉁)으로 쫓아버리게 되고 바로 이 치앙 뚱에서 남투엄의 지배가 시작된다. 

(망라이의 첫째 아들도 어린 나이에 귀족들의 농간에 반란을 모의한다는 오해(?)를 받고 망라이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남투엄 역시 그러한 구세력과의 세력 다툼의 희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남투엄은 치앙 뚱에서 죽게 되고 이어서 그의 동생 남 난이 왕위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하나 남은 성문

https://youtu.be/pPT1vMcFBqg

 

치앙 뚱의 과거 사진

https://youtu.be/edE7yV1m_FU

 

 

치앙 쌘 - 치앙 룽(진홍), 씹썽빤나 - 치앙 뚱 - 치앙 라이 - 치앙 마이- 람푼 - 람빵

 

치앙 라이에서 치앙 뚱까지 218킬로미터

몽 나이에서 치앙 마이까지 379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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