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쎗타티랏3

란쌍에서 온 12살의 쎗타티랏, 란나의 16대 왕이 되다. 란쌍을 떠난 쎗타티랏(차이쳇타티랏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은 치앙쌘, 치앙라이를 거쳐 1546년 6월 치앙마이에 도착한다. 이때 쎗타티랏을 초대한 귀족들은 대대적인 환영을 하며 그를 왓 치앙은วัดเชียงยืน으로 초대한다. 왓 치앙은에 들러 경의를 표한 후 후아 위앙(창프악 게이트)를 통해 왕궁으로 들어가 란나의 16대 왕이 된다. 이때 쎗타티랏의 나이 12살이다. 잠시 치앙마이를 맡아 아유타야와 므앙 나이의 공격을 막아낸 찌라쁘라파는 조용히 외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외할머니가 있다 하지만 쎗타티랏에게는 낯선 치앙마이, 그를 지원하는 귀족들이 불렀다고 해도 쎗타티랏에게 실질적인 힘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란쌍에서 들려온 아버지 포티싸랏의 사망소식을 듣고 1년이 조금 지난 1547년.. 2022. 10. 3.
위기에 빛난 찌라쁘라파 여왕의 활약(1545-1546) 앞에서 쌘 크라오는 왕위를 이을 마땅한 후계좌가 없기에 치앙 뚱과 므앙 나이의 영주(군주, 왕)들에게 치앙마이로 와 왕이 되라고 한다. 이때 치앙 뚱에서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므앙 나이에서는 오케이하고 치앙마이로 이동하게 된다. * 이때 귀족들이 왕도 죽이는 마당에 자기들이 왕을 칭하거나 아무나 내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말 안들었을 경우 유배로 보내기도 하는 지역의 영주들을 왕으로 불러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족이 아니라면 왕이 될 생각을 갖지 말고, 귀족이 아니라면 관료가 될 생각을 하지 마라." 라고 망라이가 말했던 란나를 지배하는 신분원칙이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왕후장상의-씨가-따로-있다 마.. 2022. 9. 26.
귀족 권력 투쟁과 란나 15대 찌라쁘라파 여왕 즉위 쌘 크라오แสนคราว 무리는 13대 타오 차이와 그의 아버지 14대 껫쳇타랏마저 죽이며 득세를 한다. 누가 이들 무리에 맞설 수 있었을까? 껫쳇타랏에게는 부인 찌라쁘라파มหาเทวีจิรประภา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쌘크라오에게 암살당한 13대 란나 왕이었던 타오 차이와 둘째 쫌므앙เจ้าจอมเมือง 그리고 셋째 딸 엿캄팁ยอดคำทิพย์이다. 둘째 쫌므앙은 몸이 약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지적장애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셋째 딸 엿캄팁은 란창ล้านช้าง(란쌍ລ້ານຊ້າງ)의 포티싼랏โพธิสาลราช(라오스어 ໂພທິສະລາດ포티싸랏) 과 결혼하여 차이쳇타티랏พระ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라오스어 ເສດຖາທິຣາດ쎗타티랏)을 낳은 바로 란창의 어머니이다..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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