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타티랏3 찌라쁘라파, 아유타야의 2차 침공에 맞서다. 1545년 7월 아유타야로 돌아간 차이라차티랏ไชยราชาธิราช,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찌라쁘라파의 조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조건이 지켜지지 않아서였을까? 아유타야의 차이라차티랏은 믄 쑤코타이를 시켜 람푼을 공격하게 한다. 당시 람푼은 싸우자와 말자로 의견이 갈라졌는데 말자의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건 너네 생각이고라고 생각한 믄 쑤코타이는1545년 12월 4일 야심한 밤을 틈타 코끼리를 타고 쁘라뚜 리를 통해 도시로 들어가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을 잡고,쁘라뚜 타낭에서 쁘라뚜 마하완까지 닥치는대로 불을 질러버린다. 람푼, 하리푼차이 마지막 왕 파야 이바가 불타는 도시를 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또 타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파야-이바가-.. 2022. 9. 28. 위기에 빛난 찌라쁘라파 여왕의 활약(1545-1546) 앞에서 쌘 크라오는 왕위를 이을 마땅한 후계좌가 없기에 치앙 뚱과 므앙 나이의 영주(군주, 왕)들에게 치앙마이로 와 왕이 되라고 한다. 이때 치앙 뚱에서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므앙 나이에서는 오케이하고 치앙마이로 이동하게 된다. * 이때 귀족들이 왕도 죽이는 마당에 자기들이 왕을 칭하거나 아무나 내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말 안들었을 경우 유배로 보내기도 하는 지역의 영주들을 왕으로 불러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족이 아니라면 왕이 될 생각을 갖지 말고, 귀족이 아니라면 관료가 될 생각을 하지 마라." 라고 망라이가 말했던 란나를 지배하는 신분원칙이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왕후장상의-씨가-따로-있다 마.. 2022. 9. 26. 귀족 권력 투쟁과 란나 15대 찌라쁘라파 여왕 즉위 쌘 크라오แสนคราว 무리는 13대 타오 차이와 그의 아버지 14대 껫쳇타랏마저 죽이며 득세를 한다. 누가 이들 무리에 맞설 수 있었을까? 껫쳇타랏에게는 부인 찌라쁘라파มหาเทวีจิรประภา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쌘크라오에게 암살당한 13대 란나 왕이었던 타오 차이와 둘째 쫌므앙เจ้าจอมเมือง 그리고 셋째 딸 엿캄팁ยอดคำทิพย์이다. 둘째 쫌므앙은 몸이 약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지적장애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셋째 딸 엿캄팁은 란창ล้านช้าง(란쌍ລ້ານຊ້າງ)의 포티싼랏โพธิสาลราช(라오스어 ໂພທິສະລາດ포티싸랏) 과 결혼하여 차이쳇타티랏พระ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라오스어 ເສດຖາທິຣາດ쎗타티랏)을 낳은 바로 란창의 어머니이다.. 2022. 9. 22.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