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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쇠퇴기

찌라쁘라파, 아유타야의 2차 침공에 맞서다.

by ChaoKaoli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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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7월 아유타야로 돌아간 차이라차티랏ไชยราชาธิราช,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찌라쁘라파의 조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조건이 지켜지지 않아서였을까?

 

아유타야의 차이라차티랏은 믄 쑤코타이를 시켜 람푼을 공격하게 한다. 당시 람푼은 싸우자와 말자로 의견이 갈라졌는데 말자의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건 너네 생각이고라고 생각한 믄 쑤코타이는1545년 12월 4일 야심한 밤을 틈타 코끼리를 타고 쁘라뚜 리를 통해 도시로 들어가 눈에 띄는 모든 사람들을 잡고,쁘라뚜 타낭에서 쁘라뚜 마하완까지 닥치는대로 불을 질러버린다.

람푼, 하리푼차이 마지막 왕 파야 이바가 불타는 도시를 보며 눈물을 흘렸는데 또 타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파야-이바가-불타는-하리푼차이를-보며-눈물을-흘린-도이바하이는-어디

 

파야 이바가 불타는 하리푼차이를 보며 눈물을 흘린 도이바하이는 어디?

산을 넘어 아들이 있는 람빵으로 도망하는 도중, 자신의 하리푼차이(람푼)을 돌아보는 이바, 자신의 도시가 희뿌연 연기와 함께 빨갛게 불타고 있는 모습을 바라 보는 이바의 눈에는 눈물이 흐

chaokaoli.tistory.com

이어 아유타야는 위앙 꿈깜의 북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찌라쁘라파와 협상을 다시 시도하나 곧 협상 결렬!!!

 

1556년 1월 중순, 아유타야의 차이라차티랏은 믄 쑤코타이를 시켜 치앙마이의 서쪽(쁘라뚜 수안독)을 공격하나 오히려 패퇴하고 만다. 이어 북서쪽 후아 린 부근에서 다시 한 번 전투가 벌어지고 치앙마이의 짜오 믄 쌈란아이의 공격에 아유타야는 다시 동쪽 방향으로 도망치게 된다.

 

서쪽 쁘라뚜 수완독이나 북서쪽 후아 린 부근에서의 전투는 치앙마이의 승리,이어 아유타야는 믄 깜팽펫을 시켜 치앙마이를 공격하게 하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많은 사상자를 내고는 삥강을 건너 동쪽으로 후퇴한다. 이때 믄 깜팽펫이 공격한 지점은 현재 정확하게 어디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서쪽에서 실패한 아유타야 1군이 도망친 방향이면서 삥강을 따라 진격했을 2군이 합류했을 동쪽 타패나 씨품 부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내 마음대로다.

그 날 저녁, 전열을 가다듬은 아유타야군은 마지막으로 남서쪽 문인 쁘라뚜 쌘풍으로 공격해들어간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고 아유타야군은 주변에 불을 지른 후 퇴각하게 되고, 뒤쫓는 치앙마이군에 많은 사장자를 내고 적지 않은 수가 포로로 잡히게 된다. 1546년 2월 8일에서 9일 사이 벌어진 일이다.

 

이어 아유타야의 왕 차이라차티랏은 무사히 아유타야까지 후퇴를 하게 되나 전투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또 너무나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보게 된다. 

 

원정 전쟁에서 대패를 하게 되면 이어 왕위를 이어가기 쉽지 않은 것은 역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 

1547년 총상의 후유증이었을까 아니면 바람을 피고있던 부인 중 한 사람의 독살이었을까, 

차이라차티랏은 죽고 11살의 그의 아들이 아유타야의 왕위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13살의 나이에 죽고만다. 음모가 없을 수 없는 대목, 란나나 아유타야는 험난한 시기로 들어간다.

 

란나, 치앙마이로 다시 오자. 

1546년 2월, 아유타야와의 전쟁은 치앙마이의 승리로 끝나고,

치앙마이는 란창(란쌍)에서 오는 찌라쁘라파의 외손자, 쳇타티랏(차이쳇타티랏ไชยเชษฐาธิราช, 우빠요, 쎗타티랏)의 도착을 기다리게 된다.

 

1546년 5월, 쳇타티랏은 루앙 프라방에서 치앙쌘을 거쳐 치앙라이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유타야가 치앙마이를 재차 공격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1. 찌라쁘라파와 아유타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2. 란창의 쳇타티랏이 치앙마이로 온다는 소식에 란나와 란쌍의 연합에 대한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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