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나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띨로까랏인 만큼,
그의 재위기인 1441-1487년 46년간은 전쟁이 일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쪽 중국에서는 명나라 3대부터 8대까지 6명의 황제가 바뀌는 상황에서
서쪽은 란나의 띨로까랏이 서쪽의 왕ราชาแห่งทิศตะวันตก으로 불리우며 활발한 정복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1442년 아유타야와의 1차 전쟁을 거친 후
란나 치앙마이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루앙 프라방까지
북쪽으로는 쳉훙(치앙 룽)의 운남지역과 버마 샨 지역 그리고 남쪽으로는 랍래, 피싸눌룩 등까지 퍼져나가며
명실공히 태국 북부, 버마동부, 중국남부와 라오스 북부 등에 걸쳐 란나 최대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모두를 다룰 필요는 없어보이고,
우선 몇몇 전쟁만 다루어보자.
우선 난น่าน이다.
시비는 난이 먼저 건다.
1442년 아유타야와의 1차 전쟁이 끝난 1년 후인 1443년,
난의 지도자 파야 깬 타오는 "베트남이 우리 난을 치려고 합니다. 도와주쇼!"라고 띨로까랏에게 긴급 타전을 한다.
띨로까랏은 "그래, 도와주지, 내 군사를 보낼테니 너무 걱정말거라."라며 난을 돕기 위해 파야오의 믄 팽을 선두로 하여 주변 지역에서 모두 4만명의 군인을 모아 난을 돕기 위해 보낸다.
그런데,
실제로 베트남의 위협은 없었다.
그럼 왜?
난의 파야 깬타오는 란나의 속국이 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파야 깬타오พญาแก่นท้าว는 난 연대기에서는 파야 인따깬타오พญาอินต๊ะแก่นท้าว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우선 난 연대기에 나오는 파야 깬타오를 잠시 보고 가자.
1432년, 파야 깬타오는 난의 왕이 된다.
하지만 15개월 후 동생들인 타오 팽과 타오 허의 반란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어 난을 탈출하여 10여일에 걸쳐 나무뿌리와 껍질, 흰개미 등을 먹으며 남쪽의 찰리앙เมืองเชลียง으로 그리고 마침내 아유타야에 도착하여 나중에 띨로까랏과 한판 하게 되는 보롬마라차티랏 2세의 도움을 받게 되고,
1434년, 깬타오와 찰리앙 군대는 난을 공격하여,
타오 팽을 죽이고 파야 깬은 다시 난의 왕이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른 깬타오였기에
띨로까랏의 란나보다는 아유타야에 속하기를 바랬을까?
아니면 더 나아가 파야오를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까?
1443년, 베트남이 쳐들어온다고 도움을 요청하던 시점으로 가보자.
띨로까랏은 파야오의 믄 팽과 함께 4만여명의 군대를 난으로 보낸다.
그들이 도착하여 난 강의 동쪽에 캠프를 차리며 대기하는 동안,
깬타오는 그 군대를 농작물 추수에 사용하는 등 다른데 관심을 돌리는 한편으로 파야오의 믄 팽과 군대를 왕궁으로 초대해 만찬을 벌이며 방심하는 틈을 타 그들을 죽이고 만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속임수였던 것이다.
이를 안 띨로까랏이 가만있을 사람은 아니고,
바로 군대를 보내 난과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 전쟁이 바로 끝난 것은 아니다.
1443년 시작하여 1448년에 걸친 전쟁 끝에 난을 정복하고
깬타오는 또 다시 아유타야로 도망가며 마무리된다.
이어 난은 깬타오의 동생인 타오 파쌩에게 위임한다.
난과의 전쟁 과정에서
띨로까랏이 난을 치러 갈 때 프래를 거쳐가며 프래 또한 손에 넣게 된다.
1449년,
반란과 전쟁을 거친 난이 약해보였는지 이번엔 루앙 프라방이 난을 공격해 온다.
띨록은 이번에도 파야오와 주변 지역에서 군대를 보내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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