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연대기에 따르면 유티싸티안이 띨로까랏에게 망명하기 전 그의 생각을 전하며 이렇게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로 간다면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 불러 주실건가요?"
"난 당신을 내 '아들'이라 부를 것이오"
그렇다. 아들!
우리는 이 '아들'이란 단어를 보았다.
띨로까랏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타오분르앙ท้าวบุญเรือง(깜므앙으로는 타오분흐앙ท้าวบุญเฮือง), 치앙라이를 지배하며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누비며 활약한 아들이었다.
하나 뿐인 아들을 띨로까랏 역시 믿을 수 있었기에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띨로까랏이 누구인가?
여섯 째 아들로 아버지 파야 쌈팡깬을 쫓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자가 아닌가.
잠재적으로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띨로까랏 후반기,
이러한 틈을 노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띨로까랏의 후궁, 매타오허묵แม่ท้าวหอมุก으로 이 여자는 치앙마이 출신은 아니고 다른 지역 출신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샨 출신이라는 주장과 쑤코타이라는 주장이 있다.
매타오허묵은 띨로까랏의 아들 타오분르앙이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이간질을 하여 띨로까랏이 아들 타오분르앙을 므앙 너이로 유배를 보내고 결국에는 처형까지 하게 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매타오허묵แม่ท้าวหอมุก, 묵มุก(진주)처럼 아름다웠을까?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란나의-유배지들과-므앙-너이เมืองน้อย-그리고-죽음
란나의 유배지들과 빠이 옆 동네 므앙 너이เมืองน้อย
망라이 큰 아들 쿤 크르앙은 아버지 망라이에게 대들었다(?) 므앙잉(위치 불명)에서 살해당하고 셋째 쿤 크루아는 문제를 많이 일으켜 치앙 뚱(켕퉁)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https://chaokaoli.tistory.com
chaokaoli.tistory.com
지나고 나면 의심하고 흥분하여 일어난 일을 알게 되는 법, 띨로까랏도 후회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매타오허묵은 타오분르앙을 없애려고 했을까?
띨로까랏 사후 왕위를 이어받은 인물은 타오분르앙의 아들로 역시 치앙라이에 있던 엿치앙라이였다.
매타오허묵과는 관련없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난 치앙마이 연대기에 나온 유티싸티안과 띨로까랏의 대화에 나온 '아들'이 생각났다.
유티싸티안이 란나의 띨로까랏에게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아유타야의 뜨라이록이 그에게 아유타야의 절반을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유티싸티안의 야심이 보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란나의 띨로까랏에게 아들이라고 불리며 양자와 같은 지위를 갖게되었다.
란나의 띨로까랏이 1409년 생, 아유타야의 뜨라이록이 1431년 생으로 22년의 나이차가 나는데,
뜨라이록과 친구 사이라는 유티싸티안 역시 얼추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고
1451년 란나 띨로까랏에게 전향 의사를 타진했을 때의 나이도 20세 전후였을 것이다.
쑤코타이 혈통으로 란나 띨로까랏의 양자 지위로 란나로 간 유티싸티안, 아무런 계획이 없었을까?
다시 매타오허묵으로 와보자.
어떻게 후궁이 되었을까?
난 이 매타오허묵을 유티싸티안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피싸눌록의 지위를 버리고 란나갈 계획을 하던 유티싸티안은 띨로까랏에게 양자의 지위를 확인받은 후에 최종결정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이고 이때 양자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차후 란나의 왕좌까지 목표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혼자 란나로 간 것이 아니고 가족, 친지 그리고 그를 따르던 백성까지 모두 만여명이 함께 갔다고 하는데,
이때 매타오허묵도 함께 간 것으로 생각한다.
란나 시대 주변지역을 복속할 경우 해당 지역 지도자의 딸을 주곤 하였는데,
유티싸티안 역시 그의 가족, 친인척 중의 여자를 띨로까랏에게 보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낼 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허묵아, 잘 들어봐. 우리가 이번에 아유타야를 떠나 란나의 띨로까랏에게 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우리가 거기까지 가서도 변변치 못하게 지낸다면 거기 갈 이유가 없게 되지. 그러니 우리 이렇게 해보자. 너를 띨로까랏의 후궁으로 보낼 것이야. 네가 가진 매력이라면 띨로까랏도 너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왕위를 이어갈 그의 외아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쫓아내는거야. 그러면 양자인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고 결국 우리가 란나를 먹게 되는거지."
그리고 매타오허묵은 그 계획을 실천하게 되지만,
이후 전개는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반대파 귀족들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전개는 매타오허묵이 쑤코타이의 왕족 출신으로 유티싸티안과 아는 사이여야 하는 전제조건이 맞아야 하지만...
난 꿋꿋하게 그렇게 생각해보련다.
역사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어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매타오허묵이 정말 쑤코타이 출신이며 유티싸티안과 란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의 나비효과로 정치적인 혼란, 왕권의 약화와 귀족들의 득세가 이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아유타와의 장기전쟁으로 인해 힘을 잃어가다가 결국 버마에 먹히게 된다.
이는 아유타야도 마찬가지다.
양국의 장기전쟁은 결국 양국의 세력 약화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버마의 등장!
매타오허묵과 유티싸티안의 나비효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 > 란나 전성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57년 란나 아유타야 전쟁, 란나 승 (0) | 2022.07.03 |
---|---|
란나와 아유타야, 서로 스파이를 보내다. (0) | 2022.06.23 |
띨로까랏에게 전향한 아유타야 왕의 친구 유티싸티안 (0) | 2022.06.17 |
띨로까랏, 자신을 우롱한 난น่าน을 정복하다. (2) | 2022.03.31 |
띨로까랏, 아유타야와 첫 전투를 시작하다. (0) | 2022.03.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