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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이야기

1900년, 란나 말기 노비의 가격은?

by ChaoKaoli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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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귀족, 평민ไพร่, 노비ทาส의 신분제는 계속 유지되어 왔는데

1900년 표시된 노비의 가격을 보면 아래와 같다.*

지역 남자 여자
62밧 62밧
치앙마이 54밧 72밧
람푼 54밧 72밧
프래 48밧 48밧
람빵 45밧 60밧
턴เถิน 42밧 64밧

번화한 도시, 번잡스러운 도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도시의 노비 가격이 비싸며,

남자보다는 여자 노비의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비는 소유자의 재산으로 여겨져 상속이 된다.

따라서 여노비에게서 태어난 아이 역시 그대로 소유자의 재산이 되기에 더 비싸다.

세종 때 실시된 노비종모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평민과 여노비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노비가 되는 것일텐데..

여기서 여노비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노비도 부인을 가질 권리가 있는데,

 

만일

1. 주인이 배우자의 동의없이 노비의 부인을 취할 경우, 그 부인(여노비)은 자유의 몸이 된다.

2. 만일 여노비의 동의가 있는 경우라면, 그 남편은 자유의 몸이 된다.

 

또 남노비가 승려가 되는 걸 주인이 허락한 경우, 서품 후 그는 자유인이 되고,

주인이 노비를 죽이려고 할 경우, 그 노비는 자유의 몸이 된다. 

노비라 할 지라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당시 노비가 되는 경우는,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경우, 고급관료들의 노비가 되며

또 가장 많은 경우는 빚을 지고 갚을 수 없게 되어 노비가 되는 경우이다.

 

또한 노비라 하여도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으며, 아프면 주인으로부터 의료지원을 받을 권리 또 무엇보다 합당한 금액을 지불할 경우 자유인이 될 권기가 있었다. 

노비들을 사고 파는 경우들도 많았는데 이 경우는 모두 므앙 사무실에서 등록관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노비 중에는 왕, 귀족 또는 부유한 평민들이 사원에 기부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치앙마이 주 쫌통에 있는 왓프라탓 쫌통에는 노비만 700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 어딘가 몇 천명까지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난다. ㅋㅋ

 

사원에 노비를 기부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라 하겠다.

이에 따라 사원 권력이 비대해져 부패가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으리라는 것은 안봐도 뻔하다.

 

또한 부유하여 노비를 다수 가지고 있던 평민들 또한 매년 해야 할 부역이나 노역 등을 노비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것 또한 뻔한 것 아니겠는가?

 

인간사 어디나 다 똑같다. 

 

ทาส, 노비, 노예라면 역시 사랑의 노예, 이런 곳에 써야 맛깔나는 단어임.

탓락ทาสรัก, 탓학ทาสฮัก

 

https://www.youtube.com/watch?v=Ef_Y8LqTApI&list=PL_TKXbmI6sa4ZcO53jh9ozJSwHnrpR_Zr&index=1 

 

* 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 ฉบับสมบูรณ์, สรัสวดี อ๋องสกุล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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