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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이야기

치앙마이의 처음과 마지막, 위앙 깨오เวียงแก้ว

by ChaoKaoli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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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라이 형님의 치앙마이 건설 이야기를 몇 번 다루었고
또 앞으로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 다루겠지만
그 치앙마이의 마지막, 란나의 마지막은 결국 왕궁이 사라지는 것, 왕궁의 상징성이 사라지는 시점이 되었을 것이다.

치앙마이는 위앙 치앙마이 그리고 위앙 치앙마이 안쪽에 왕궁이 있는 위앙 깨오เวียงแก้ว
의 이중으로 만들어졌다.
위앙 깨오는 아누싸와리 오와빼โอวาแป๊ะ의 뒤쪽 대각선 방향에 있다.

출처:https://www.silpa-mag.com/history/article_5445

버마 독립 후의 까윌라가 치앙마이를 복구하고 다시 입성할 때,
그는 망라이가 했던 대로 후아위앙(창프악)을 통해 성내로 들어가 치앙만에 잠시 머물다 이어 위앙깨오로 들어갔다.

이 위앙깨오가 망라이 때부터 사용되던 왕궁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그 위치와 상징성 또 건물 일부 벽에서 발견된 위앙 깨오라는 단어를 통해 왕궁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전 1909년 창경궁이 왕족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서 동물원을 만들며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창경원으로 바뀌었듯이, 위앙깨오의 일부에 역시 란나의 몰락과 함께 작은 동물원과 교도소가 들어서며 그 상징성이 사라지게 된다.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910년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결국 씨암(싸얌)의 의도가 담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성내에 그것도 위앙 깨오에 교도소를 둘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패자의 역사가 맞보아야 하는 슬픔이랄까.

중앙 교도소에서 여성 교도소로 바뀌어 유지되다가 2013년인가 매림으로 이전되고 2016년 공식적으로 철거가 진행되어 역사 공원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보인다.

https://www.reviewchiangmai.com/prison-in-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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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자리가 제대로 복원되고 위앙 깨오의 상징성이 조금이라도 회복될 때,
치앙마이는 지금 보다 더 안정적으로 발전되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위앙 깨오와 관련해서는
란나의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해당 부분에서 다시 자세하게 다루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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