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나이로 치앙라이를 다스리던 망라이의 장남 쿤 크르앙은,
주변 귀족의 농간에 휩쓸려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게 되고,
아버지 망라이가 "아들아 잠깐 오거라. 이야기 좀 하자. 난 아직도 널 사랑한단다"라고 해서 꼬드긴 귀족과 함께 망라이가 있는 팡으로 오던 중!!!
망라이가 보낸 궁수 아이 피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독화살을 맞고 죽은 자리에 쩨디와 사원을 세웠다고 하며 그곳을 므앙 잉ยิง이라고 했다. 잉ยิง, 쐈다 이거지.
난 므앙 잉을 치앙라이와 팡 사이로 생각해서 더 북쪽이라 생각했다.
분명 육로보다는 강을 따라 왔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로로 그것도 내 생각과는 다른 코스로, 더 남쪽으로 진행했나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의-장남-쿤-크르앙의-반란?category=1022436
비록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나,
치앙마이 북쪽 프라오에는 관련 땀난이 전해져온다.
프라오는 도시 모양이 코코넛처럼 생겼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치앙마이 인근 요충지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망라이가 하리푼차이를 치러갈 때 군대가 휴식하면서 전열을 정비하거나 식량을 보충한 위치이기도 하면서,
6대 끄나 왕이 죽자 동생 마하 프롬이 조카 쌘므앙마에게 반란을 일으킬 때도 치앙라이에서 내려와 이 지역을 먼저 점령하였듯이 치앙마이에 반란을 일으킬 때도 이 지역을 활용하곤 했다.
위앙 째싹เวียงแจ้สัก 또는 프라오왕힌เวียงพร้าววังหิน이라고도 한다.
치앙마이에서 프라오까지는 100여키로 정도 떨어져있다.
2시간 조금 안걸리는 거리로 농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아주 아주 조용한 동네이다.
이곳에 망라이의 장남 쿤 크르앙의 전설이 왓 위앙잉วัดเวียงยิง 또는 왓 꾸위앙잉วัดกู่เวียงยิง과 함께 전해진다.
프라오에는 오래되어 방치된 쩨디가 하나 있는데,
프라오 사람들은 바로 그 쩨디가 있는 자리가 망라이의 아들이 죽은 자리로,
망라이가 장례를 치르고 아들을 위해 세운 쩨디와 사원이 있던 자리라는 것이다.
이름하여 왓 꾸 위앙잉!
그 지역은 프라오의 반뽕인데, 난 참 이 뽕โป่ง이 들어가는 지역과 인연이 많나보다.
뽕양, 뽕양콕, 반뽕
암튼 이 사건으로 인해 망라이는 부인 낭우아밍 위앙차이에게 엄청난 원한을 사게 되고 그녀가 위앙 꿈깜으로 출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말년에 벼락을 맞아 죽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치앙마이에서 프라오 가는 길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프라오 또한 아주 작은 동네이다.
치앙마이가 예전에 비해 번잡해졌다고 일부러 이곳으로 이동해 지내는 외국 사람들도 있는데,
보기에 정말 심심해보였다. 심심할 수 밖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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