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로부터 독립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난팁창의 후손들이 이후 왕가를 이어가게 된다.
이 블로그에서 난팁창의 처음 등장은 아래 출처에 있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짜마테위가-람빵에-아들-만나러-가는-루트
이후 씨암에 먹힌 치앙마이의 마지막 9대 왕이 까오나와랏แก้วนวรัฐ인데,
그에게는 4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10명의 자식이 있었고,
그 자식 중 장남이 바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짜오 너이쑤까쎔เจ้าน้อยศุขเกษม(또는 짜오 우따라깐꼬쏜เจ้าอุตรการโกศล)이다.
그리고 이 짜오 너이의 고모가 바로 씨암의 라마 5세와 결혼한 다라라싸미로,
후에 짜오 너이의 사랑을 반대하기도 한다.
1880년 태어난 짜오 너이는 15세 무렵,
버마의 말라맹(มะละแหม่ง, 모울메인(몰람야인)မော်လမြိုင်)에 있는 성 패트릭 학교로 유학을 간다.
당시 버마는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유학갔다고 공부만 하란 법도 없고,
운명적인 사랑은 돌아다녀야 만나는 법,
어느 날 머리도 식힐 겸하여 짜오 너이는 시장 구경을 가게 된다.
이 시장에는 마미야มะเมียะ라는 아름다운 버마 소녀가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담배를 팔고 있었다.
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라는 송창식의 노래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분명 짜오 너이가 먼저 찝จีบ쩍거렸을 터,
매일같이 담배를 사갔으려나???
아무튼 그 둘은 이내 눈이 맞고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버마에서 짜오 너이는 마미야와 함께 생활을 하며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한다.
특히나 그 약속을 둘 만이 한 것이 아니고,
프라탓 짜이 따란(พระธาตุไจ้ตะหลั่น, 짜익딴란파고다)에서 변하지 않을 사랑의 맹세를 한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먼저 배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평생 고통 속에 살 것이며, 일찍 죽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사랑 변치않게 해주소서. "
란나 역사를 보면
이런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아 화를 당하는 경우들이 종종 나온다.
1대 라이 형도 부인과 변치않는 사랑을 약속했다가 바고가서 부인을 또 얻어오는 바람에
벼락에 맞아 죽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도 하고,
또 란나 4대 왕 파야 캄푸도 절친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맹세한대로 강에서 악어에 물려 죽는다.
짜오 너이의 결과도 그랬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치앙마이 왕자 짜오 너이와 버마의 평민 마미야에게는 헤어질 날이 다가온다. 1년 후 이제 귀국해야 하는 짜오 너이, 두 사람은 이대로 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로 변장하여 장사치들 틈에 섞여 짜오 너이를 따라 치앙마이로 오게 된다.
그리고 아직은 알려지면 안되기에 마미야는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숨어 살게 된다.
그런데!
왕궁으로 돌아온 짜오 너이, 그를 기다리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결혼 소식이었다.
왕족은 왕족과 결혼해야 하는 법, 짜오 부아누안เจ้าบัวนวล과 이미 어른들끼리 약속을 마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약혼을 하게 된 짜오 너이, 더 이상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미야를 숨겨둘 수 만은 없기에 마침내 사실대로 털어놓게 된다.
"안된다!"
"난 이 결혼 반대일세"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된다"
씨암에서 왕비로 있던 다라라싸미 또한 이 둘의 결혼을 반대했는데,
사실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았다.
왕족과 평민의 사랑, 왕비가 외국인 그것도 버마인,
당시는 영국이 버마를 점령한 상태로 버마인이 왕비가 된다는 것은 자칫 치앙마이가 영국의 것이 될 수도 있게 된다는 의미도 있었으니, 치앙마이뿐만 아니고 씨암에서도 절대 불가를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시대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파도 앞에서 그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비록 이름뿐인 왕이지만 왕위를 이어가야 할 장남 짜오 너이이기에 그 반대는 극심했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서로 잠시 3개월이라는 시간을 둔 이별을 약속하게 된다.
"우리 비록 지금은 헤어지나, 내 프라탓 짜이 따란에서 한 약속은 꼭 지킬 것이요.
3개월 후 그대를 찾아갈 것이요. 나를 믿고 기다려주시오"
"믿어요"
무릎을 꿇고 긴 머리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남자의 발을 씻겨주고는 고향 말라행으로 돌아간다.
그 두 사람 마음이 어땠을까?
이미 두 사람의 소문은 날대로 났을테고 마미야가 또 한 미모한다고 하니 떠나는 마미야를 보기 위해 쁘라뚜 하이야ประตูหายยา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마미야는 코끼리를 탄채 눈물과 함께 치앙마이를 떠난다.
(쁘라뚜 하이야는 치앙마이 바깥 성문 중 하나)
그 와중에 짜오 부아누안은 약혼을 파기하게 된다.
버마로 돌아간 마미야는 하루를 천년같이 3개월을 기다린다.
하지만 짜오 너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마미야는 변함없는 사랑의 증표로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고,
짜오 너이는 한 동안 씨암에 불려가 활동하며
왕족 가운데 최고 미인이라는 짜오 부아춤เจ้าบัวชุม과도 결혼을 하게 되고 치앙마이로 돌아온다.
마미야는 짜오 너이의 결혼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러 치앙마이로 가게 되는데,
그를 만나려는 이유는 그녀와 한 약속을 지키라고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라행에서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그만 잊고 행복하게 살라고 전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짜오너이는 그녀를 차마 만날 수 없었고 자신의 루비 반지만 대신 전해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이 나고,
짜오 너이와 짜오 부아춤의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못했으니 마미야가 치앙마이로 그를 만나러 온 그 날 이후 짜오 너이는 6년여를 술독에 빠져살다가 알콜 중독으로 1913년 33살의 나이로 죽고 왓 쑤안독에 안치된다.
그리고
마미야는 출가인으로 평생을 홀로 살다가 1962년 75세로 생을 마감하며 이 둘의 비극적인 사랑도 끝이 난다.
다라라싸미는 짜오 너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아이는 부인 짜오 부아춤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술로만 세월을 보내다 결혼 몇 년 후 겨우 서른을 넘기고 죽었어요"
이 이야기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자꾸 양념이 가미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두고 현지 취재를 하며 확인하는 등 단순 거짓이라고 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짜오 너이는 죽고 왕가의 무덤이 있는 왓 쑤안독에 묻혀있는데,
이 마미야도 그곳에 묻혀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고,
담배를 팔고, 담배 피기를 좋아했던 마미야,
출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절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한 여인이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 그녀로 추정된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짜오 너이,
사진을 보면 어렸을 적 분명 총명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멋진 젊은이였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결국 맹세한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함부로 맹세 금지!
마미야มะเมี๊ยะ!
https://www.youtube.com/watch?v=kLcZnkuBjus&list=RDkLcZnkuBjus&start_radio=1&rv=kLcZnkuBjus&t=199
버마 모울메인과 프라탓 짜이따란
https://www.youtube.com/watch?v=y3O8t8bKO8A&t=8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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