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북동쪽 쨍시품แจ่งศรีภูมิ 부근에 란나 사원이 아닌 타이 야이족(ไทใหญ่, 응이어우เงี้ยว라고도 함) 사원이 하나 있다.
지나갈 때마다 치앙마이 최초의 버마 사원이라는 것만 듣고 둘러보고는 '음.. 좀 다르군' 뭐가 다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러고 나왔던 적이 있다. 사원이 많다보니 역사나 관련 이야기를 모른 상태로 여기저기 보다보면 쉽게 지치고 재미없다.
이 사원은 버마 독립 이후 7번째 치앙마이 왕이 되는 인타위차야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버마 샨 지역의 타이 야이를 사로 잡아 치앙마이 창프악, 창모이, 파함 등 여기저기에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가족과 함께 온 부아라이บัวไหล라는 여인이 있었다.
이름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주 미인이라는 소리겠지? 이 여인은 인타위차야논 왕 눈에 띄어 후궁이 된다.
그리고 이 여인이 타이 야이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사원을 짓게 되는데 그 사원이 바로 이 왓 빠빠오 사원이다.
이때가 1883년!
버마 점령기에 버려진 치앙마이였기에 이 사원이 있던 터 역시 황폐화되어 빠오 나무ต้นเปา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왓 빠빠오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1896년 인타위차야논이 죽고 다시 버마 상인과 재혼한다.
이 사원이 있는 자리는,
예전 란나 6대 끄나 왕이 지내던 거처가 있던 곳이다.
(끄나 왕을 정리하는 중 이 위치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왓 빠빠오를 소개하게 됨)
끄나 왕은 이 지역을 좋아해서 주로 이곳에서 머물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던 터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아들 쌘므앙마가 즉위하자 끄나의 동생, 마하 프롬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바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시신 상태로 몇 달간 그대로 있기도 했던 슬픈 역사가 있는 자리이다.
시신은 성내로 들이지 못하는 법, 어쩔 수 없이 해자에 임시 다리를 놓고 성벽 한쪽을 뚫어서 성내로 들여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가 1385년!
(시구문이자 귀신문인 쁘라뚜 쌘뿡(ประตูแสนปุง. 쁘라뚜 쑤안쁘룽ประตูสวนปรุง, 쁘라뚜 쑤안뿡ประตูสวนปุง)은 끄나의 손자인 쌈팡깬 시대나 되어야 건설된다. 귀신문, 쁘라뚜 피는 어느 도시나 있었는데 그 참혹스러운 분위기는 역시 라따나꼬신 รัตนโกสิทนร์시대의 방콕, 이건 차후에 다룰 예정이다.)
그럼 타이 야이가 치앙마이에 이주한 시기가 1883년 무렵이 되나?
아니다! 그전부터 이미 많이 들어와 거주했을 것이다.
왜?
이미 라이 형 시대부터 치앙 뚱, 몽 나이 등 샨지역을 점령하였는데,
당시 전쟁은 노동력을 뺏아오는 목적이 강했기에 타이 야이뿐만 아니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잡혀와 거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319년, 망라이의 손자 쌘푸에게 반란을 일으키며 몽 나이의 타이 야이들을 이끌고 치앙마이를 점령한 적이 있다.
비록 남투엄에게 쫓겨나기는 했지만 2년이나 치앙마이를 지배하였으니 그간 그곳에 정착하였던 타이 야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부아라이 부인의 주도로 건설된 왓 빠빠오는,
이후 치앙마이와 인근 거주하던 타이 야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최초의 타이 야이 사원이 된다.
흥미있는 사원들을 간추려서
사원 내부와 양식 스타일 등까지 다루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면 너무 복잡하고 재미없을 듯 하여 간단하게 사원 역사 정도를 소개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왓 빠빠오를 간략하게 소개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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