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푼차이의 초대 여왕인 짜마테위จามเทวี 그녀는 누구인가
기록이나 구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짜마테위
1. 라워 왕의 딸이다.
2. 람푼 빠쌍의 부잣집 딸이다.
여기서는 람푼 빠쌍 지역의 반 넝두บ้านหนองดู่ (이 마을은 몬족 마을)에 한 부자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인타,
이 부자 부부와 친한 이웃 부자가 있었는데 이들 두 부부는 서로 친했기에 자식을 낳으면 서로 결혼시키자고 약속을 한다.
이어 인타 부부가 딸을 낳고 다른 부부는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인타의 딸이 3개월이 되던 어느 날,
잠을 자던 아이를 커다란 매가 발톱으로 낚아채어 가게 된다.*
이 매는 북쪽으로 날아 도이 캄을 지나게 되는데(다른 기록에는 도이 수텝)
마침 와수텝의 눈에 띄게 된다.
"뭐지 저게? 아이잖아. 뭐 저런 일이..."
와수텝은 마법을 발휘, 소리를 지르게 되고(사자후?) 매는 아이를 놓치고 만다.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연못의 연꽃 위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본 와수텝은 "신기한 일이로세. 그럼 저 아이가 선택받은 아이라면 나의 부채질에 따라 내쪽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라면 부채질을 하는데 이 아이를 태운 연꽃이 와수텝에게로 오게 된다.
이에 따라 와수텝은 이 아이의 이름을 부채를 부치다พัดวี의 의미가 있는 "위วี"로 정한다.
아이를 찾았으면 마땅히 그 부모를 찾아주어야 할 터이지만,
전설이니까 와수텝은 아이를 딸로 삼아 키우며 아이에게 그가 익힌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게 된다.
13살이 된 짜마테위,
와수텝은 삥 강에서 대나무 뗏목에 아이를 태워 보내며 말한다.
"이 아이가 미래에 큰 성취를 이룰 지도자로 선택받은 아이라면 아무런 피해없이 라워에 도착할 것이다."
와수텝은 바람대로 짜마테위는 라워에 잘 도착하고,
왕의 눈에 띄어 입양, 이름을 "짜마테위"라고 하게 된다.
구약성경의 모세 이야기와 비슷?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짜마테위의 미모는 주변에 알려지게 되고,
짜마테위는 현재 매솟 부근에 있는 라마푸리의 왕자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는데
짜마테위의 아름다움에 반해 청혼을 하게 되는 다른 왕이 나오게 되고,
당연히 거절당한 그는 전쟁을 선포한다.
짜마테위는 직접 참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이 과정에서의 많은 죽음을 보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결혼을 하게 된 짜마테위, 평온한 삶을 이어가나 했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북쪽 람푼 지역에 도시를 세운 와수텝과 쑥까탄따는 가와야를 500명**의 사절단과 함께 라와로 보내 라와 왕에게 짜마테위를 새로 만든 도시 하리푼차이의 여왕으로 초대하게 된다.
당연히 쉽게 승락하지 않던 왕은,
쑥까탄따의 설득에 결국 허락하게 되고 이어 500명의 대장경에 능숙한 승려 등을 포함한 다양한 수행원들과 함께 짜마테위는 하리푼차이로 떠나게 된다.(다른 버전에서는 와수텝이나 가와야 또는 와수텝과 쑥까탄따가 설득하기도 한다.)
이때 짜마테위는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하리푼차이까지는 짜오프라야, 삥강을 이용하여 7개월이나 걸리는 여정이었다.
도착과 함께 짜마테위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짜마테위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와수텝이 하리푼차이를 건설하고 2년 후라 한다.)
도착 7일 후 쌍둥이 마한따욧(마하야사)과 아난따욧(인다와라)을 출산하고 라와족 윌랑카와의 전쟁 등을 거치며 하리푼차이 왕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리푼차이 짜마테위가 왕위에 오른 연도를,
요녹연대기는 657년(7년간 재위)
치나깐말리빠꼼은 662년(7년간)
그 외 632년(17년간 재위), 767년 등 여러 가설이 있으나,
짜마테위웡과 치나깐말리빠껀을 토대로 하면 659~662년이 된다.
역사학자들은 600년대는 너무 이른 시기라고 보고 있다.
재위는 짜마테위웡과 치나깐말리빠껀에 따르면 7년이 되는데, ****
이는 짜마테위가 하리푼차이 왕위를 큰 아들 마한따욧이 7살 때 윌랑카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후 윌랑카의 쌍둥이
딸과 결혼하며 물려주기 때문이다.
마한따욧은 하리푼차이를그리고 동생 아난따욧은 람빵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어 아난따욧은 어머니 짜마테위를 너무 사랑하여 옆에 계속 두게 되는데 아마도 이는 정통성을 염두에 둔 형 마한따욧과의 세력 다툼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당시의 선주민이라 할 수 있는 라와족 윌랑카 왕과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 람푼에는 오래 전 커다란 검은 새에 의한 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아마도 도적떼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500이라는 숫자는 연대기 등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500명이 아닌 많음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 왜 남편이 아닌 짜마테위가 가게 되었는가 그것도 임신 3개월의 몸으로. 당시 남편은 승려가 되어 짜마테위가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임신 3개월의 몸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난 것은 어떤 내부적인 권력 암투 또는 주변국과의 세력 다툼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왕위를 7살의 자녀들에게 바로 물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초대 여왕 자리에 있던 짜마테위였기에 후세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위는 그녀가 죽지 않는 한 그러한 조건들이 맞았을 때 물려주었을 것이다. 켈랑(람빵)도 둘째 아들에게 맡겼다는데 맡길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그녀의 세력권에 둔 이후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60세에 왕위를 물려주고 92세에 죽었다는 기록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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