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마테위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뿌 쌔, 야쌔와 그들의 아들 와수텝(바수데바, 와수데와) 그리고 윌랑카이다.
윌랑카가 라와족 왕이니 짜마테위가 몬족 승려와 수행원들을 데리고 오기 전 현재 치앙마이 일대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라와족이 된다.
따라서 짜마테위의 하리푼차이 등장은 라와족에서 몬족으로의 교체기가 된다.
그런데 "sacred mountains of nothern thailand and their legends"를 보면,
와수텝 이야기와 함께 당시 라와족과 타이 야이(샨족) 사이에 서로의 복장 차이와 헤어 스타일 차이로 인해 잦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이 윌랑카, 너희는 바지를 왜 그렇게 촌스럽게 입냐?"
"뭐라고 캄댕! 너희 헤어스타일보다는 낫다"
어느 날 와수텝이 라와족의 왕 윌랑카와 타이 야이의 왕 짜오 루앙 캄댕*을 도이 캄으로 불러 라와족은 타이 야이의 바지 스타일대로 옷을 입고, 타이 야이는 라와족의 헤어스타일로 바꾸는 것으로 하는 중재를 통해 화해를 이끌어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라와족이 살던 지역에 타이 야이, 따이족의 일부가 내려오며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며,
두 종족은 오래 전쟁을 치른 후 화해를 거치며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물론 이때까지는 라와족의 세력이 더 강했을 것이고...
여기에 몬족의 짜마테위가 라와족 윌랑카를 몰아내며 라와족 - 따이족 - 몬족으로의 세력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고, 몬족이 지배하던 일대는 13세기 말 망라이에 의해 다시 따이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7년간 하리푼차이에 첩자로 활약하여 하리푼차이 점령에 지대한 공을 세운 쿤 파가 라와족 출신이었으며, 또한 망라이가 군대를 몰고 내려오는 과정에서도 그 일대가 몬족의 위성 도시들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내부적인 혼란도 있었다지만 라와족의 도움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짜마테위 이후 200여년이 지나 라와족의 다른 이름인 밀라까의 이름으로 하리푼차이 왕위를 빼앗은 경우도 2번이나 있었으니 윌랑카의 패배 이후 흩어졌던 라와족의 세력이라지만 10-11세기까지도 적지 않은 세력으로 남아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13세기 망라이가 치앙마이를 건설할 때도 라와족 노인들의 말에 따라 왕위에 오를 때 북쪽 문을 이용했다든가 도시 시의 중심에 기둥을 세운다든가(인타킨 필라) 하는 내용은 그때까지도 라와족은 계속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 짜오 루앙 캄댕은 치앙다오 동굴 전설에서도 등장하고, 미얀마 북부를 포함한 북부 지역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름으로, 그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불명확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이름이나 이 인물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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