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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치앙마이 삼왕상 건립 과정 1983~1984년

by ChaoKaoli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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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삼왕상,

순서대로 파양 응암므앙, 파야 망라이 그리고 파야 루앙(람캄행)이다.

출처:https://pixabay.com/ko/photos/세-왕-치앙마이-태국-조각품-686224/

 

삼총사! 

서로 롭브리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이자 친구 사이인 이들 삼총사,

망라이는 같이 공부했다 안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파야 응암므앙과 파야 루앙은 함께 공부한 사이로 

서로 아주 친해서 서로 자주 방문하는 사이였다.

 

그런 응암 므앙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과 눈이 맞은 파야 루앙이 바람을 피다 딱 걸려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삼국-동맹-2-응암므앙의-부인을-탐한-프라-루앙을-잡아라?category=1022436 

 

삼국 동맹 2 - 응암므앙의 부인을 탐한 프라 루앙을 잡아라.

응암므앙은 16살에 롭부리(lavo)로 유학을 갔다. 이때 같이 공부한 이가 바로 프라 루앙 즉 람캄행이다. 유학생들로 더 친했을 것이다. 이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친구 사이로 그들이 오가던

chaokaoli.tistory.com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를 화해하려고 등장한 인물이 바로 파야 망라이다.

그 화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서로간에 손에 피를 내어 물에 섞어 마시며 맹세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그리고 망라이가 치앙마이를 건설할 때는 그들의 의견을 참고하게 된다.

특히 파야 루앙의 의견에 따라 쑤코타이 스타일을 따르게 된다.  

 

그런 화해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 바로 삼왕상이다. 

 

이 조각은 누가 언제했을까?

1983년, 태국 최초의 여성 조각가인 카이묵 추또ไข่มุกด์ ชูโต와 마놉 쑤완나삔타มานพ สุวรรณปินฑะ에 의해 8개월에 걸쳐 2.7미터의 크기로 디자인되고 조각되어 완성되었다. 

 

출처:https://www.facebook.com/chiangmaicityheritagecentre
(카이묵 추또)출처:https://www.facebook.com/chiangmaicityheritagecentre
(마놉 쑤완나삔타)출처:https://www.facebook.com/chiangmaicityheritagecentre

(아래 사진 모두 출처가 같다. 출처:https://www.facebook.com/chiangmaicityheritagecentre)

 

아직도 기분이 좀 나빴을까?

약간 기분이 상해보이는 파야 응암 므앙이다. ㅋㅋㅋ

 

망라이, 그만 대충 화해하게나 응암이 루앙이!

파야 루앙은 크게 나온 것을 찾지 못함. 

아마도 좀 미안한 감이 있어서일까? ㅋㅋㅋ

 

조각을 할 때 반응들은 어땠을까?

전폭적인 지지를 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인간사에 기록될 일이겠지.

'야 왜 왕들이 모두 웃통을 까고 있냐?'

'왕이 나이들어 보이는데?'

'왜 여자인 네가 하냐?'

'내가 해도 너보다 낫겠다'

뭐 이런 말들이 수없이 나왔으리라 ㅋㅋㅋ

 

역사, 해부학 그리고 태국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선정하여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실제 3왕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세 친구가 모두 1238년에서 39년 생이니 망라이가 서로 화해 시키는 포즈를 고려한다면,

1287년 삼국동맹을 시점으로 하면 5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1296년 치앙마이 건설을 기준으로 하면 58세가 된다. 

즉, 역사의 시점에 맞는 나이를 염두에 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방콕에서 조각을 마치고 치앙마이로 가져온 후

1983년 9월 23일 현재의 자리에 안치되고

1984년 1월 30일 개막식을 거행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9월 23일 오전 7시 9분 시청을 출발하여 창프악 게이트로 향하는 모습이다.

이후 진행 방향은 찾을 수 없으나 창프악 게이트로 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망라이가 처음 치앙마이를 건설하고 라와족(루아족)의 전통에 따라 개를 앞세우고 치앙마이 왕궁으로 들어간 문이 후아 위앙(창프악)게이트 였던 것이다.

버마 독립 후 까윌라 역시 이 문을 통해 치앙마이로 들어섰다.

이러한 전통을 따라 삼왕상도 창프악 게이트를 통해 치앙마이로 들어섰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개을 앞세우고 후아 위앙으로 들어서는 망라이!

출처:https://www.photodhar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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