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나 4대 왕이 된 파야 캄푸는 치앙 쌘에 머물면서
난น่าน의 파야까오난กาวน่าน과 파야오를 함께 공격하여 먹기로 약속한다. *
이때 파야오의 왕은 응암 므앙으로 치앙마이 연대기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응암 므앙은 이미 망라이 보다 일찍 죽었으니
연대로 따지면 응암 므앙의 손자 파야 캄르คำลือ시대가 된다.
파야 캄르의 아버지는 치앙다오 동굴의 전설과 관련있는 파야 캄댕พญาคำแดง이다.**
캄푸의 란나 군대는 파야오를 먼저 공격한 후 금은보석, 귀중품 등을 약탈한 후 캄푸에게 바쳤다.
이를 본 캄푸, 흡족해하면서도 파야 까오와 나누지 않게 되고,
이를 안 난은 '이놈들 봐라, 그렇다면 우리 몫은 우리 힘을 빼앗겠다'하면서 전의를 다짐한다.
란나, 난과 파야오간의 전쟁이,
란나와 난의 전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참고로 난과 프래는 치앙쌘이나 람푼처럼 한 축에 강을 두고 도시를 구축했는데,
난은 사각형, 프래는 람푼처럼 소라껍데기 모양이다.
난은 난강, 프래는 욤강이다.
까오난은 캄푸의 군대를 추격하게 되나 캄푸의 군대는 이미 치앙쌘으로 돌아가게 되고,
뒤쫓던 까오난은 치앙쌘 대신 팡으로 가서 약탈을 감행한다.
이를 듣게 된 캄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다시 까오난 군대를 추격하여 일대 전투를 벌이게 되고,
끝내 까오난은 많은 인명피해를 보고 철군하게 된다.
난과의 전쟁 후 이번에는 군대를 이끌고 프래를 공격하러 가나,
공격에 실패, 켈랑(람빵)으로 피신했다가 치앙쌘으로 돌아간다.
이때 프래에게 크게 당하지 않았나 싶다.
이후 캄푸는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평화롭게 치앙쌘에만 머물게 된다.
여기서는 난과 프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나중에 난과 프래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난은 파야오 응암 므앙의 지배를 일시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응암 므앙 부인의 에피소드가 또 나온다.
이 이야기가 람캄행이 응암 므앙의 부인에게 반해 바람을 피우게 되고 망라이가 중재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모태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응암 므앙의 부인은 얼마나 매력적이었기에 험난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지...
* 까오는 타이까오ไทกาว 따이까오로 프래와 난에 살았던 까오족을 말한다. 치앙마이 전설에서 난의 왕은 파야 까오난 그리고 난 사람들을 까오난이라고 나온다.
** 치앙다오 전설은 따로 소개할 예정이다.
'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 > 란나 초기 혼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어에 물려죽은 란나 4대 왕 파야 캄푸พญาคำฟู (0) | 2022.02.25 |
---|---|
쌘푸의 쌘은 치앙쌘의 쌘, 치앙쌘 건설 1329년 (0) | 2022.02.23 |
1대 파야 망라이부터 4대 파야 캄푸까지의 연도 개괄 (0) | 2022.02.20 |
쿤 크루아의 치앙마이 침공 - 조카야~ 물러나라! (0) | 2022.02.16 |
망라이 당시 란나의 영토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0) | 2022.02.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