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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치앙마이 건설까지

치앙마이를 건설한 왕은 망라이มังราย? 멩라이เม็งราย? 2

by ChaoKaoli 202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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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이나 종려나무 잎 기록 등에는 망라이가 나오는데

왜 멩라이เม็งราย란 이름이 같이 사용되고 있는가?

 

실제 이 이름은 고전 자료가 아닌 1907년 발간된 요녹 연대기 (퐁싸오단요녹 พงศาวดารโยนก)에 처음 나오는 이름이다.

1907년! 

 

왜일까?

1. 당시 영국이 버마를 점령하는 정세 가운데 망라이มังราย의 망이 태국과 오랜 전쟁을 치룬 여러 버마 왕들 이름 앞에 붙는 접두사라서 란나가 망라이 왕조라고 하면 버마가 란나를 자기들 영토라 할까 두려워하여,

2. 망라이 아버지 이름을 조합해서 멩라이라는 이름을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망라이 아버지 이름을 조합했다는 것은 전설에서 가져온 것인데 

 

전설에 따르면,

아버지는 히란나콘응언양หิรัญนครเงินยาง의 왕 라오 멩ลาว เม็ง, 어머니는 치앙 룽(진홍, 쳉훙, 치앙 룽, 찌앙 훙)의 공주인 낭 텝캄카이นางเทพคำข่าย (또는 우아밍 쫌므앙อั้วมิ่งจอมเมือง으로도 불림) 그리고 외할아버지 치앙 룽의 왕 룽깬차이รุ่งแก่นชาย 등 모두의 이름을 조합해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망라이가 아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이름을 딴 멩룽เม็งรุ่ง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멩라이가 아닌 망라이가 더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탁본 자료출처 : https://db.sac.or.th/inscriptions/inscribe/detail/1424

 

จารึกวัดเชียงมั่น

กล่าวถึงประวัติการก่อสร้างวัดเชียงมั่น ตั้งแต่ พ.ศ. 1839 จนถึง พ.ศ. 2124 กล่าวคือ เมื่อ พ.ศ. 1839 พญามัง

db.sac.or.th

망라이와 멩라이라는 이름은

란나어 고문서나 자료들이 불태워지거나 소실된 이유와 연관되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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