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 쌈팡깬이 13세의 나이로 란나 8대 왕위에 오르자 치앙라이에 있던 형 이꿈깜은
"그 자리는 내 자리다"하며 치앙마이를 공격한다.
하지만 그 공격은 실패하고 쑤코타이의 파야 싸이르타이พญาไสลือไทย에게로 피신한다.
7대 쌘므앙마가 즉위했을 때는 삼촌 마하 프롬이 공격 실패하고 아유타야로 피신했는데,
이번에는 쑤코타이였다. 하지만 이전의 쑤코타이가 아닌 아유타야에 속한 도시 쑤코타이였다.
속국이라 해도 그 연대는 끈끈한 상태가 아니니,
여전히 쑤코타이는 쑤코타이다.
쑤코타이 파야 싸이르타이는 속으로 좋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치앙마이를!" 하며 이꿈깜과 함께 출정을 하게 된다.
먼저 싸이르타이는 이꿈깜과 함께 파야오를 먹기 위해 파야오로 쳐들어가나 만만찮은 파야오의 반항에 입맛다시고 치앙마이로 간다.
1439년 3월 7일 드디어 치앙 루악 시장에 도착한다.
치앙루악은 현재 타패 게이트가 있는 곳이다.
망라이 때 건설했는지 후대에 건설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재의 타패 게이트는 처음 치앙루악 게이트라고 불리던 곳이다.
그리고 실제 타패 게이트는 와로롯 시장 가기 전 사거리 왓 쌘팡วัดแสนฝาง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타페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치앙루악 게이트가 타패 게이트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치앙마이 연대기 등에 따르면
타패 게이트 통과 이야기없이 바로 치앙 루악 게이트가 나오는데,
아마도 이 당시까지는 아직 외곽의 2차 타패 게이트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싸이르는 치앙루악에서 조금 더 떨어진 외곽에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지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메세지를 보낸다.
"치앙루악 시장 사람들아 그리고 치앙마이 사람들아!!! 내가 누군지 알지? 나 쑤코타이 왕임. 그리고 나에겐 이꿈깜이 있다. 이꿈깜이 누군지 알지? 바로 너희들이 왕이라는 쌈팡캔의 형님이시다. 형님이 왕이 되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어서 나와 항복하고 치앙마이를 이꿈깜에게 내놓거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싸워야 할걸?"
하지만 치앙마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에고.. 그 이꿈깜, 우리도 잘 알고 있지요. 나이가 들어도 지혜나 공덕이 없으니 치앙마이를 먹을 자격이 없구만요.
말이 길 필요있나요? 어서 와서 한 판 합시다. 뻐킹양ป้อคิงหยัง 싹캄버สักกำบ๋อ?"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뻐킹-양ป้อคิงหยัง이-안녕하세요?category=1018590
"너희들 소원이 그렇다면 좋다. 한 번 붙자. 하지만 서로 기운빼지 말고 어떠냐 대표로 한 사람씩 나와 서로 싸우고 이긴 쪽에서 치앙마이를 먹는 것이?"
"좋다. 싸투!"
대량의 인명피해를 내는 전투대신 이와 같이 대표로 나와 승부를 가르거나 또는 탑을 먼저 높이 짓는 쪽이 이기는 등의 재미있는 상황들이 종종 나온다.
우선 전설인 듯 전설아닌 전설같은 이야기 삐앙아저씨와 버마군과의 잠수 승부도 그 한 예일 것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삐앙-할아버지와-미-대사관-앞-하얀-쩨디?category=1003198
이리하여 남쪽 쑤코타이에서 검술에 뛰어난 한 명이 나오고,
치앙마이에서는 한엿짜이펫หาญยอดใจเพชร이 대표로 나와 각각 두 자루의 칼을 들고 치앙쾅ตำบลเชียงขวาง에서 대결을 펼치게 된다.
치앙마이니까 칼 부딪치는 소리도 '치앙 치앙'
결과는?
한엿짜이펫이 쑤코타이 대표의 발가락을 베며 승리하게 된다.
자, 승패는 치앙마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럼 약속대로 쑤코타이는 그대로 물러났을까?
말이 그렇지 아직 그건 아니다.
잠시 물러난 듯 하나 치앙마이 주변을 떠나지 않고 도이 쑤텝 기슭, 현재 치앙마이 동물원 건너편의 맑고 맛있는 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진지를 구축한다. 이곳은 나중에 파야 쌈팡깬이 위앙 쩻린을 건설하는 곳으로 도이 쑤텝, 도이 뿌이 등에서 내려오는 이곳의 물은 치앙마이 대학교 내의 앙깨오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
또한 이곳은 이전부터 라와족의 역사와 전설이 깃들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후 위앙쩻린을 다루면서 라와족의 전설도 같이 다룰 생각이다.
이 이야기는 현재 이 지역에 남은 하나 뿐인 사원인 왓 무분의 우물 이야기로도 연결될 수 있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와-돼지-우물에-빠진-사원-왓-무분วัดหมูบุ่น?category=1024559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며 치앙마이를 먹을 기회만 노리던 쑤코타이의 파야 싸이르타이는 치앙마이 군대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다.
그것은 치앙마이의 쌘파넝แสนผานอง이 쨍 후아린(현재 치앙마이 람병원 앞 북서쪽 모서리)부터 도이 쑤텝 기슭까지 200여대의 소 달구지와 군대를 일렬로 쭈욱 배치해두었던 것이다. 쌘파넝은 7대 쌘므앙마 왕때도 활약하더니 여기서도 활약한다. 소 달구지라 그러니 좀 약해보이는데, 우차라고 할까? 아마도 코끼리, 말보다 싸고 많은 소를 물자나 장비 이동용으로도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약간 개조하면 전투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했을테고...
그런데 쨍후아린에서 도이 쑤텝 기슭의 치앙마이 동물원까지는 4km정도로 200여대의 우차로 공포감 조성은 어렵고 아마도 코끼리 등을 포함한 몇 만명의 군사들이 배치되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군사들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는 쨍 후아린부터는 아니지만 쑤코타이 군사 주변으로 강력한 포위망이 있었을 수도 있고...
파야 싸이르타이는 포로로 잡은 치앙마이 사람에게 묻는다.
"저것이 다 뭣이냐?"
"뭐긴요. 당신들하고 싸우려고 모인 치앙마이 군대지요"
파야 싸이르타이는 "이대로는 우리 모두 죽을 수 있다. 해뜨기 전 쫌통으로 철수한다." 라고 한다.
하지만 치앙마이 파야 쌈팡깬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 이들을 추적, 양쪽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것으로 파야 쌈팡깬과 이복 형의 다툼은 마무리된다.
파야 싸이르타이에게 남겨진 무엇일까?
얻은 소득이 있을까?
있다.
"거기 말이야. 거기 도이 쑤텝 산기슭 맑은 물 나오는데 거기 말이야. 야.. 그 물 맛있더만"
싸이르타이와 이꿈깜은 치앙라이로 피한 후 치앙라이 사람들을 모아 쑤코타이로 돌아간다.
쑤코타이로 돌아온 파야 싸이르타이와 이꿈깜,
파야 싸이르타이는 이꿈깜에게 욤강변แม่น้ายม에 있는 므앙 싹을 맡긴다.
많은 사상자가 나오긴 했으나
쑤코타이를 물리친 파야 쌈팡깬은 쑤코타이의 파야 싸이르타이가 진지를 구축하며 머리도 감고 물도 맛있다고 한 지역에 승리를 기념하며 위앙 쩻린을 건설하고 왕궁도 세우며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곳에 머물다가 여섯째 아들 타오 록(띨로까랏)에게 당하기도 한다.
*
참고) 도이 쑤텝에서 시작되어 위앙 쩻린을 거쳐 흘러가는 물의 흐름은
망라이가 치앙마이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치앙마이가-새로운-도읍지로-적합한-7가지-상서로운-조건들?category=1022436
'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 > 란나 전성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란나 9대 띨로까랏의 등장 - 아버지 그만 자리에서 내려오시지요 (0) | 2022.03.07 |
---|---|
쌈팡깬, 이번엔 중국ห้อ과 싸우다! (2) | 2022.03.06 |
란나 8대 파야 쌈팡깬พญาสามฝั่งแกน 즉위 1401년 (0) | 2022.03.03 |
7대 왕 쌘므앙마 즉위 1385년- 삼촌의 반란 (2) | 2022.03.02 |
란나 6대 왕 끄나, 왓 쑤안독, 왓 도이 쑤텝 전설의 주인공 (0) | 2022.03.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