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나 8대 파야 쌈팡깬에게는 여러 부인에게서 낳은 10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 중 여섯째가 타오 록으로
그가 바로 란나 9대 파야 띨로까랏이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쉬어가기-아버지를-쫓아낸-란나-9대-왕-띨로까랏의-어릴-때-이름은
왕위를 장남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었으나
장남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 장남을 염두에 두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첫째는 타오 아이로 5살이 되었을 때,
쌈팡깬은 그를 이미 후계자로 생각하고 그를 위앙 쩻린 근처에 살게 하였다.
위앙 쩻린은 쌈팡깬이 쑤코타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건설한 도시로 쌈팡깬은 그곳에도 왕궁을 짓고 위앙 쩻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바로 그 곁에 타오 아이를 둔 것이다.
하지만 타오 아이는 19살에 죽고 만다.
여기서부터 꼬이는 것이었을까?
1409년 태어난 타오 록에게는 프라오를 맡겼는데,
쌈팡깬의 군대 파병 명령에 그의 참여가 늦는 바람에 중요 도시 중 하나인 프라오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의 매싸리앙으로 보내진다.
프라오에서 매싸리앙까지는 약 300km정도 떨어져있다.
지금 버마의 치앙 뚱(켄뚱)만큼이나 먼 거리로 보내졌던 것이다.
1342년 쿤 크루아의 반란을 진압한 2대 차이쏭크람의 아들 타오 남투엄이 반역 혐의로 쫓겨난 곳이 치앙 뚱이었으니,
타오 록도 그 정도 먼 거리인 매싸리앙으로 보내졌으니 군대 파병과 참여가 늦어진 이유가 다른 속뜻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그는 아버지 쌈팡깬을 추방하며 왕위를 빼앗기 때문이다.
어떤 불만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마도 타오 아이를 후계자로 삼은 것에 대한 불만이 있지 않았을까?
란나 최대 전성기를 구가한 띨로까랏 시대는 한편으론 전쟁이 일상인 시대였을텐데,
그것은 그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쿤-크루아의-치앙마이-침공-조카야-물러나라
1441년,
타오 록을 지지하는 쌈덱요이สามเด็กย้อย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매싸리앙에 있는 타오 록을 비밀리에 치앙마이로 불러들인다.
쌈덱요이를 귀족이라 하는 자료도 있으나
치앙마이 연대기에서는 그를 왕궁의 주방에서 일했던 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그때 쌈팡깬은 치앙마이에 있지 않고 위앙 쩻린에 머물고 있었다.
밤이 되자 위앙 쩻린에 불길이 치솟는다.
"불이야 불이다 불!"
방화범은 쌈덱요이였다.
쌈덱요이는 위앙 쩻린의 쌈팡깬이 머물고 있던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든 것이었다.
쌈팡깬은 불길을 피해 치앙마이로 돌아갔으나,
그가 미쳐 몰랐던 것은 아들 타오 록이 이미 돌아와 왕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오 록, 매싸리앙으로 쫓겨났던 것은 분명 당시도 반역 혐의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 쌈팡깬을 죽이지는 않는다.
날이 밝자 왕궁에 모인 관리들은 낯선 광경을 보게 된다.
그것은 쌈팡깬과 타오 록이 각각 왕좌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쌈팡깬은 말한다.
"나 그만 물러나련다. 나의 왕국은 여기 있는 타오 록에 물려주려고 하니 그리 알아라.
질문은 거절한다. 나 간다. 찾지 말아라."
그리고 그는 황금 물병에 담긴 물을 타오 록 머리에 부어주며 왕위를 물려준다.
란나 왕의 즉위식에서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의식이 있는데 이는 정화 의식임과 동시에 부어진 물을 주어담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확고한 왕위를 상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들! 너에게 이 한마디만 할게. 내 주방에서 일하던 쌈덱요이 저 놈은 나쁜 놈이야. 저 놈이 비록 너를 왕좌의 자리에 앉게 했지만 저 놈을 절대 믿지 말거라. 저 놈을 절대 네 곁에 두지도 말고 높은 자리에 앉히지도 말거라. 저 놈은 나를 배신했듯 너를 배신할 것이다.
아들아! 네가 나를 어디로 보내든 난 상관없단다. 마음편히 나를 쫓아내거라. 사랑한다 아들아"
타오 록은 쌈팡깬을 250여km 떨어진 므앙 쌋เมืองสาด(현재 버마의 몽삿)으로 보낸다.
타오 록이 란나 9대 왕위에 오른 연도는 1441년,
란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파야 띨로까랏 또는 부처에게 붙이는 극존칭의 프라짜오를 붙인 프라짜오 띨로까랏พระเจ้าติโลกราช의 등장이다.
왕위를 찬탈했으니
그를 도운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을 해야 했을텐데,
반란을 주도한 쌈덱요이, 이후 문제가 없었을까?
그리고 므앙 쌋으로 쫓겨난 파야 쌈팡깬, 선대의 왕이 살아있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만있었을까?
띨로까랏 초기 문제의 불씨를 남겨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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