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까몬랏กมลราช(깜포차랏กัมโพชราช) 재위 921-941(20년 7개월)기간에 하리푼차이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자신의 집을 버리고 안전한 곳을 찾아 하리푼차이를 떠난다.
이들이 떠돌다 처음 정착한 곳은 지금 버마의 타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다 다수의 이주민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차별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한 번 더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이동한 지역이 바고(홍싸와디, 함싸와디)이다.
이 바고와 하리푼차이는 서로의 언어가 같아 서로를 더 잘 이해했기에 하리푼차이 사람들은 바고에 정착을 시작한다.
바고의 사람들은 기꺼이 하리푼차이 사람들에게 옷이나 먹을 것, 머물 곳 등을 제공하며 서로 융화되어 간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흐르고,
하리푼차이의 콜레라 역시 진정되어 간다.
그래도 하리푼차이가 고향인지라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돌아간 것은 아니다.
바고에 결혼하거나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람들, 연로한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남게 된다.
하리푼차이로 돌아간 사람들은,
바고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바고에 남은 가족, 친척들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강을 통해 먹을 것과 입을 것 또 보내고 싶은 물건 등을 띄워 보내게 된다. 물론 하리푼차이의 강에서 띄워 보낸다고 하여 바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러이 끄라통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이후에도 하리푼차이와 바고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며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하리푼차이와-러이-끄라통
사람들이 돌아온 하리푼차이는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이제 100년의 시간을 넘어
라워와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게 되는
32대 왕 아티따야랏อาทิตยราช(1037-1042)으로 넘어가 보자.
* 바고에는1566년 세워진 쁘라뚜 치앙마이가 있다.
900년대 콜레라 대유행으로 비롯된 하리푼차이와 바고 사이의 끈끈한 우정, 1292년 그 하리푼차이를 정복한 란나의 망라이 그리고 1566년 바고로 잡혀온 란나 사람들이 만든 쁘라뚜 치앙마이!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치앙마이-게이트는-몇-개가-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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