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라이 큰 아들 쿤 크르앙은 아버지 망라이에게 대들었다(?) 므앙잉(위치 불명)에서 살해당하고
셋째 쿤 크루아는 문제를 많이 일으켜 치앙 뚱(켕퉁)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망라이-장남은-프라오에서-죽었나-왓-꾸위앙잉วัดกู่เวียงยิง?category=100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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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크루아는 망라이가 죽은 후 므앙 나이(몽 나이)에서 군대를 이끌고 슬쩍 치앙마이로 쳐들어왔다가 패한 후 치앙마이 구석에 갇혀 죽게 되고,
이어 동생 쿤 남난이 치앙 뚱을 이어 통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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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8대 쌈팡깬 때는 타오 록(띨로까랏)이 파병이 늦었다는 이유로 서쪽의 매싸리앙으로 유배당하고,
타오 록이 왕이 되어서는 아버지 쌈팡깬을 므앙 쌋(몽 쌋)으로 유배보내게 된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란나-9대-띨로까랏의-등장-아버지-그만-자리에서-내려오시지요?category=1022438
그리고 명나라로 부터 서쪽의 정복왕으로 불리기까지 한 띨로까랏,
말년들어 후궁 매타오허묵แม่ท้าวหอมุก의 말을 듣고 아들 타오분르앙ท้าวบุญเรือง을 므앙 너이เมืองน้อย로 유배보내게 된다.
치앙라이에서 태어난 띨로까랏의 손자이자 타오분르앙의 아들 엿치앙라이พระญายอดเชียงราย, 10대 란나의 왕에 오르게 되지만 매타오허묵의 모함으로 할아버지의 손에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본 그였기에 당시 상황 자체가 얼마나 엿같았을까.
매타오허묵과 관련된 스토리는 상상을 더해 추리해보면,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개될 수도 있다. ㅋㅋㅋ
특히나 매타오허묵이 치앙마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지역 사람이고 하는데,
역사 소설적 관점에서 난 쑤코타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보는 의견이 있어 놀랬던 기억이 있다. ㅋㅋㅋ
이건 다음에 다시 다루어보기로 하고...
암튼 여기서 등장하게되는 므앙 너이는 어디일까?
그리고 왜 유배지들이 서쪽과 북쪽으로 치우쳐있을까?
남쪽이나 동쪽으로 왜 안보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고립성일 것이다.
우따라딧이나 난, 프래 등으로 유배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해당 지역은 남으로는 쑤코타이, 아유타야로 그리고 동으로는 베트남과도 연계될 수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선택지는 서쪽이나 북쪽이 될 수 밖에 없다.
란나의 지배하에 있어 관리가 용이하면서도 고립된 지역이자 힘을 합쳐 란나에 대적할 만한 강한 세력이 없는 지역!
그럼 타오분르앙이 쫓겨났다는 말 그대로 작은 도시인 므앙 너이는 어디에 있을까?
빠이에서 북동쪽으로 20키로 정도 떨어진 산속에 있다.
빠이가기도 멀미하느라 힘든데 저기까지 가려면...
산속 분지,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겠지.
재미있게도 역사는 흥망성쇠를 거듭하는데,
띨로까랏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처럼 사방으로 정복전쟁을 펼치며 란나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지만
이 최전성기가 말그대로의 최전성기로 이후 란나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6대 끄나 왕부터 전성기의 시작으로 한다면 9대 띨로까랏까지 121년간이 란나의 전성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띨로까랏 이야기는 따로 더 풀어가기로 하고,
므앙 너이,
난 바로 이 도시가 란나 왕가와 귀족의 내부암투로 시작된 란나의 쇠퇴기를 알리는 슬픔이 담긴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0대 엿치앙라이, 할아버지 손에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았는데 정상적으로 왕 노릇을 했겠는가?
8년 후 귀족들에 의해 므앙 싸맛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 므앙 싸맛เมืองสะมาด 역시 므앙 너이 근처에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어디인지 불명확하다.
이어 11대 엿치앙라이의 아들 깨오 왕พญาแก้ว이 등장하고,
깨오 왕은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므앙 너이를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30여년을 통치하다가 상한 말고기(육회)를 먹고 죽고...
12대 왕이 된 인물은 깨오 왕의 동생인 껫쳇타랏พญาเกศเชษฐราช(므앙껫끌라오พระเมืองเกษเกล้า)인데 이 껫체타랏이 살던 지역도 므앙 너이고 나중에 다시 쫓겨나게 되는 곳도 이 므앙 너이다.
그러니까 12대 왕 껫쳇타랏의 할아버지 타오분르앙이 유배를 당한 곳이 므앙 너이로,
타오분르앙의 아들 10대 왕 엿치앙라이는 므앙 너이의 옆동네 므앙 싸맛으로 쫓겨가게 되고,
11대 깨오 왕은 말고리를 먹다가 죽고,
므앙 너이에 살던 깨오 왕의 동생인 껫쳇타랏이 란나의 12대 왕위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형 깨오는 왕위를 이어 받게 되어 치앙마이에 살고,
동생 껫쳇타랏은 아버지를 따라 함께 므앙 싸맛, 므앙 너이로 가 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두 사람은 형제이나 이복 형제라고도 한다.
이 껫쳇따랏은 므앙 너이에서 살다가 귀족들이 불러 왕이 되었는데,
이어 다시 귀족들에 의해 므앙 너이로 쫓겨났다가
다시 불려와 왕이 되고 마침내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이렇게 띨로까랏 이후 12대 껫쳇타랏까지 므앙 너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9대 띨로까랏
타오분르앙-므앙 너이로 유배 후 유배로 끝난 것이 아니고 나중에 처형됨
10대 엿치앙라이-므앙 싸맛으로 유배 후 사망
11대 깨오-말고기 먹다가 사망
12대 껫쳇타랏(부인 찌라쁘라파테위พระนางจิรประภาเทวี) - 므앙 나이에서 왔다가 므앙 나이로 쫓겨났다가 치앙마이에서 귀족들에 의해 암살됨.
므앙 너이를 보려면,
https://www.youtube.com/watch?v=a3x5n67i1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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