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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나 역사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ล้านนา/란나 전성기

믄동나콘의 죽음과 아유타야와의 찰리앙(치앙츤) 점령전

by ChaoKaoli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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믄동나콘은 누구인가부터 다시 시작하자.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띨로까랏의-전사-믄동나콘หมื่นด้งนคร은-누구인가?category=1031475

 

띨로까랏의 전사, 믄동나콘หมื่นด้งนคร은 누구인가?

띨로까랏이 북으로 떠난 틈을 노려 뜨라이록은 군대를 이끌고 프래를 공격하고, 이 소식을 들은 띨로까랏은 다시 돌아와 믄동나콘으로 하여금 반격하게 한다. 뜨라이록, 다시 아유타야로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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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haokaoli.tistory.com/entry/상상하는-역사-믄동나콘이-쌘므앙마의-아들로-장남?category=1031475

 

믄동나콘이 쌘므앙마의 큰 아들일 수는? - 상상하는 역사

역사는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9대 띨로까랏과 함께 전장을 누빈 란나의 맹장 믄동나콘이 쌘므앙마가 매왕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만난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인지라 정식 후계구도에서는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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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1년, 

찰리앙(치앙츤)을 점령한 후 띨로까랏은 치앙마이로 돌아가며 찰리앙을 믄동나콘에게 맡긴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1474년,

유안파이에 따르면,  믄동나콘이 난, 프래 등을 점령하고 스스로 통치하며  띨로까랏이 믄동나콘을 처형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84세(쌘므앙마 즉위 4년, 1390년 출생이라 하면 띨로까랏보다는 19살이 많다), 

매타오허묵이 그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하는데

매타오허묵은 1471년 죽었다고 하니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믄동나콘이 처형되기 1년전,

믄동나콘은 불상에 입혀져있는 금을 떼어내어 자신의 칼자루를 만든다. 

그리고 이어 1474년, 믄동나콘이 프래, 난 등을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띨로까랏 그를 처형하고 그의 목을 베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길가에 걸어둔다. 

믄동나콘의 죽음 후 그의 부인은 아유타야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믄동나콘이 통치했던 찰리앙을 두고 뜨라이록까낫과 띨로까랏이 공방전을 벌이게 되는데,

결과는 뜨라이록까낫의 승리, 이어 찰리앙은 아유타야의 것이 된다.

 

그 전쟁 과정을 시로 표현한 것이 바로 유안파이로

이 책에서 띨로까랏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라오의 왕으로 등장한다. 

라오! 

 

https://chaokaoli.tistory.com/entry/타이와-따이-그리고-라오부제란나는-라오다

 

타이와 따이 그리고 라오(부제:란나는 라오다?)

란나글자를 연습하다보니, 뜬금없이 타이와 따이에 대한 생각이 났다. 타이족과 따이족을 구분해야 한다느니 따이까다이 어족이라느니 하는 글들을 보았는데, 그 차이가 뭘까? 뭐 깊이있게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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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기록들은 남아있지 않으니 역시 나름의 구성을 통해 이 믄동나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는 억울하게 모함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다른 생각이 있었을까?

정말로 불상에서 금을 떼어냈을까?

출처:https://www.bantuek.go.th

 

유안 파이를 참고하여 믄동나콘의 죽음을 다시 보자.

 

1474년, 

치앙츤(유안파이 기록에 따라)에 있던 믄동나콘은 지역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는 지도자였다. 

치앙츤에 머문지도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84세인 그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52세 때인 1442년 띨로까랏이 왕이 된 이후 계속하여 전장에서 선봉에 서며 띨로까랏을 도와준 그였다.

그런 그가 71세부터 84세까지 13년간이나 란나와 아유타야의 전방, 요충지에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요충지라고 하지만 치앙마이나 람빵에서 보면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어쩌면 그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외감 또는 권력에서 멀어진 기분?

 

그런 그를 두고,

치앙마이의 띨로까랏에게 믄동나콘이 프래, 난을 점령하고 란나를 양분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80의 노인이지만, 삼촌이기도 한 그는 띨로까랏이 만만히 볼 만한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띨로까랏은 "삼촌, 치앙마이로 잠깐 오시지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며 그를 치앙마이로 불러 들인다. 당연히 치앙마이로 불러 그를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믄동나콘은 띨로까랏의 계략을 알았지만,

순순히 치앙마이로 띨로까랏을 만나러 간다. 

"살 만큼 살았다. 후회없이 전장을 누비며 살았다. 란나의 왕이 부르니 내 기꺼이 따를 뿐이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띨로까랏, 계획대로 그를 살해한다. 

그를 살해하고는 그의 목을 저잣거리에 효시한다. 

"반역자는 이렇게 됨"이라고 경고하고 싶었으리라.

띨로까랏을 위해 52세부터 32년간 전쟁터에서 싸워왔던 그의 마지막치고는 비참하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치앙츤에 남아있던 믄동나콘의 부인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유타야에 도움을 요청한다.  

유안파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믄동나콘은 죄가 없음에도 죽임을 당했다.

라오의 왕, 그의 부덕함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쫓아냈으며 사랑스러운 아들을 죽였다."

한마디로 띨로까랏은 나쁜 왕이요 또 이에 반해 자신들의 왕 뜨라이록까낫은 얼마나 훌륭한 왕인가 하고 노래한다. 

 

이 부인의 이야기는 그후 나오지 않는다. 

 

이후 전개는 다음과 같다.

1474/1475년

믄동나콘의 부인, 아유타야에 도움 요청

난과 프래, 치앙츤공격, 지역 관리가 성문 개방

뜨라이록까낫, 치앙츤 재탈환

띨로까랏, 치앙츤 공격, 탈환

뜨라이록까낫, 치앙츤 재탈환

결국 치앙츤(찰리앙)은 이후 아유타야의 것이 된다.

 

유안파이는 아유타야의 "뜨라이록까낫 왕 만세"라는 시점에서 쓰여진 시로, 

여기에서 적장이면서 13년이나 치앙츤을 지배하고 있던 믄동나콘만을 예외적으로 칭송하며 띨로까랏 나쁜 놈이라는 시점에서 쓰고 있다. 믄동나콘이 치앙츤에서 아무리 잘했다 한들 그는 아유타야인이 아니라 란나인이었다. 말하자면 적장이다.

그런 그를 그만큼 칭찬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난 이런 생각이 든다.

믄동나콘, 그는 어쩌면..

란나나 아유타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치앙츤을 만들어, 양국의 틈새에서 난과 프래를 먹고 중립지역에서 자신만의 치앙츤 왕국을 세우려하지는 않았을까?

13년간 치앙마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며 느낀 소외감,

자신에게 보내는 지역민들의 신뢰와 존경,

13년간 전쟁터에서 갈고 닦은 그의 자신감,

정말 그는 란나와 아유타야 사이에서 중립국으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양국에게 그만한 대우를 받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84세라는 나이 그리고 여전히 강력한 란나의 띨로까랏을 보고,

치앙츤에 남겨진 가족이나 백성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순순히 치앙마이로 간 것은 아닐까?

 

믄동나콘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되면 유안 파이를 따로 정리해 소개해보고 싶다. 마음만 그렇다. 

 

https://youtu.be/bMRcvMVk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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